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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0월 27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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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내 손가락에 싸움을, 내 손에 전쟁을 가르치셨네.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셨네. 하느님, 당신께 새로운 노래 부르오리다.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당신은 임금들을 구원하시고, 당신 종 다윗을 구하시나이다.

 

2022년 10월 27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0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페 6,10-20)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 오늘 복음
    (루카 13,31-35)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0월 27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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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복음
루카 13장 31-35절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최연준 사도 요한 신부 강론

 

 

2022년 10월 27일 (목)
최연준 사도 요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김주신 멜키올 신부 강론

 

 

2022년 10월 27일 (목)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기

 

오늘 제1독서는 ‘에페소서’의 마지막 권고 단락입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신앙인들의 여정을 악의 세력과 전투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 전투에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할 것을 주문합니다. 우리 몸에 갖추어야 할 무장을 조목조목 나열하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갖출 요소들이 허리띠, 갑옷, 신발, 방패, 투구, 칼과 같이 당대에 실제로 쓰였던 전쟁 도구에 비유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허리띠는 허리 주변의 옷을 동여맴으로써 전투 과정에서 신속하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의 가르침으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영적 전투에 참여할 태세를 갖춥니다. 

하느님을 닮아 정의롭게 되려는 노력, 곧 일상에서 “의로움”을 실천하려는 자세는 악의 공격에서 우리 몸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음에 비길 수 있습니다(이사 59,17 참조). 발에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라 함은 악한 세력의 방해에 굴복하지 말고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려는 열정을 언제나 갖추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니는 굳건한 “믿음”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 곧 악의 세력이 던지는 거센 유혹을 막아 내는 튼튼한 방패 구실을 합니다. 투구는 우리 몸에서 매우 중요한 부위인 머리를 보호하는 구실을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 함은(이사 59,17; 1테살 5,8 참조) 우리의 머릿속 모든 생각을 하느님께서 이루실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무장하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칼을 언급하시는데, 앞선 도구들이 방어하는 수단이었다면 칼은 공격에 쓰이는 도구입니다.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공격 수단은 성령의 칼로, 이는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을 통해서 마치 전투를 앞둔 병사처럼 비장한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 여정 안에서 상대해야 할 적은 매우 강한 세력들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죄악으로 유혹하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간계를 꾸밉니다. 이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진리와 의로움, 복음에 대한 열정과 굳건한 믿음,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무장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정신무장 성령무장

 

지난 바자회는 하느님 은총과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과 봉사 덕분에 성황리에 아주 잘 끝났습니다. 날씨는 너무 화창하고 적당히 따듯했으며 많은 분이 바자회를 찾아와 주셨고, 봉사자들은 모두 기쁘게 봉사해주셨습니다. 

옥에 티가 있었다면 민원 때문에 구청 직원이 와서 그만두라고 한 것인데 그런데도 큰 문제로 만들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다하고 끝을 잘 맺었습니다. 

일은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다음 날 미사 때 생겼습니다.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제 내부의 영적인 문제였지요. 하필 미사 중에 그 일이 떠오르며 그 구청 직원의 괘씸함이 눌러도, 눌러도 계속 생각나는 거였습니다. 

그 어린 것이 화를 벌컥 그리고 먼저 낸 것과 구민에게 봉사해야 할 공무원이 마치 군림하듯이 행세한 것이 괘씸하여 한 번 찾아가 따지고 잘못했다는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런 제가 너무 한심하고 그런 자신을 보는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미사를 드릴 때 하느님께 마음을 쏟으라고 했는데 제 마음이 자꾸 그 애송이한테 가 있었고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할 제 마음을 부정적 감정이 차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스럽습니까? 

이런 저를 바오로 사도는 오늘 강하게 나무라는 듯합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아니어도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고 지향을 둬왔습니다. 

이 나이를 먹어서도 시시하게 사소한 인간적인 감정에 지배당하지 말자고. 하느님께 가야 할 나이에 인간 문제에 너무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뺏기지 말자고. 

그런데 이렇게 지향을 두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제 옆에 사탄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나이 들면서 점점 듭니다. 

특히 형제들이나 신자들과 미사와 기도를 함께 드릴 때보다 혼자 드릴 때 하찮은 생각이나 감정이 많이 듭니다. 

흔히 말하듯 제가 정신 무장이 되어 있다면 이런 것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텐데 저는 아직 정신 무장이 덜 되어있다는 표시겠지요. 

이런 저와 우리에게 오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하라고 합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런데 하느님의 무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바오로 사도는 오늘 여러 말로 하고 있지만 제가 그것을 한마디 말로 줄이면 바로 성령 무장입니다. 

정신 무장이라는 일반적 용어를 신앙적 용어로 바꾸면 성령 무장일 것이고,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가 대적하실 때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셨듯 악령과 사울 때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으로 무장하고 싸워야 합니다. 

성령 충만, 성령 무장을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인생은 나를 향한 누구의 믿음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렸다.

 

베트남 전쟁에 맥주 배달하러 간 한 남자의 실화를 그린 ‘지상최대 맥주 배달 작전’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1967년 뉴욕시 인우드에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치키 도너휴’가 주인공입니다. 미국은 북베트남과 한창 전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키의 친구들 전사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치키와 가장 친했던 토미까지 행방불명이었습니다. 토니는 치키가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술김에 자신 친구들을 찾아 여전히 미국이 그들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맥주를 전해주고 오겠다고 소리칩니다. 

이 소문은 온 마을에 퍼집니다. 치키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전쟁터에 아들과 애인을 떠나보낸 이들은 그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들이 주는 선물을 전해주라고 많은 양의 맥주와 선물들을 싸 줍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치키가 당연히 안 갈 것이라고 은근히 무시합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을 믿고 선물을 맡기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베트남으로 떠나는 배를 알아봅니다. 혹시 자리가 없으면 핑계라도 대겠지만 3시간 뒤에 출발하는 배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운명처럼 맥주를 들고 급유 담당으로 배를 탑니다. 2개월 후에 베트남에 도착하고 사흘 동안 휴가를 얻습니다. 혼자 친구들에게 맥주 배달을 왔다는 그를 군인들은 모두 C.I.A. 요원으로 알고 도와줍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일로 전쟁터로 올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다른 친구를 찾으러 최전방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점점 그는 자신을 C.I.A.로 믿고 도와주는 군인 장교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물론 진짜 C.I.A.에게 쫓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군 기자들보다 더 훤하게 전쟁의 상황을 파악해갑니다. 그리고 의미 없는 전쟁에 자신이 친구의 입대를 종용한 것을 후회합니다. 친구들은 처음엔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치키에게 화를 내다가도 나중엔 고마워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그 친구가 전사한 것을 알게 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 일조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두려움으로 예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루카 13,31)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2-33)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생명에 집착하는 겁쟁이로 봅니다. 그래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정체성이 ‘예언자’라고 하십니다. 예언자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세상의 믿음이 아닌 당신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믿음을 받아들이고 그 믿음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삽니다. 

마이클 조던이 마이클 조던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분들은 누가 뭐래도 그의 부모님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흑인이었고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보잘것없는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어려웠고 그 가난과 멸시 속에서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그가 열세 살이 된 어느 날, 옷 한 벌을 건네며 물었습니다.

“이 옷이 얼마나 할 것 같니?”

“1달러 정도요.”

“너는 이 옷을 2달러에 팔 수 있겠니?”

아버지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봤습니다.

“멍청이나 그 돈을 주고 사겠지요.”

그는 볼멘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버지의 눈빛은 진실하고 간절했습니다.

“너는 왜 시도해 보려고 하지 않니?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렵단다. 만약 네가 이 옷을 팔면 나와 네 엄마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제야 그는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한번 해 볼게요. 하지만 못 팔 수도 있어요.”

그는 정성껏 옷을 빨았습니다. 다리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손으로 옷의 주름을 펴고 바닥에 펼쳐 그늘에 말렸습니다. 이튿날 그는 이 옷을 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하철역으로 갔습니다. 그는 6시간 동안 물건을 사라고 외친 후에야 옷을 팔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또 낡은 옷 한 벌을 건넸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렴. 어떻게 하면 이 옷을 20달러에 팔 수 있겠니?”

그 옷은 기껏해야 2달러의 값어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격려했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또 한 번 좋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그림을 공부하는 사촌 형에게 옷에다 귀여운 도널드 덕과 미키마우스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 입구로 가서 물건을 사라고 외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잣집 도련님을 데리러 온 집사가 자신의 도련님을 위해 이 옷을 샀습니다. 추가로 5달러의 팁까지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 액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또다시 그에게 낡은 옷을 한 벌 건넸습니다.

“너는 이 옷을 200달러에 팔 수 있겠니?”

아버지의 깊은 눈은 오래된 우물처럼 그윽하게 빛났습니다. 이번에 그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옷을 받아들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두 달 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 미녀 삼총사의 여주인공 ‘파라 포셋’이 홍보차 뉴욕을 방문한 것입니다. 기자 회견이 끝나자 그는 곁에 있던 보안요원을 밀쳐내고 파라 포셋에게 뛰어들어 낡은 옷을 들이밀며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파라 포셋은 어리둥절하다가 곧 미소를 짓고는 거침없이 사인했습니다. 

“파라 포셋의 친필 사인이 있는 티셔츠를 200달러에 팝니다.”

치열한 가격경쟁 끝에 한 석유 상인이 1,200달러의 비싼 값을 주고 티셔츠를 구매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와 아들은 침대에 누웠습니다. 아버지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얘야, 세 벌의 옷을 팔면서 깨달은 게 있니?”

“저는 이제 깨달았어요. 아버지는 제게 큰 가르침을 주신 거예요. 머리를 굴리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네 말이 맞는다. 하지만 그건 내 맨 처음 의도가 아니었단다. 나는 그저 네게 알려주고 싶었어. 1달러의 값어치밖에 없는 낡은 옷조차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처럼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겠니? 우리가 삶에 믿음을 잃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단다. 우리는 그저 조금 까맣고 조금 가난할 뿐이야.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니?”

바로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찬란한 태양이 떠올라 그의 몸과 눈앞의 세상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낡은 옷조차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데 내가 날 업신여길 이유가 없지.’

그때부터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며 자신을 단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서 말입니다. 농구 후보 선수만 할 때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해 낼 수 있다는 아버지의 믿음을 굳게 유지하였습니다. 20년 후 그의 이름은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졌습니다.

『당신의 주인은 DNA가 아니다』를 쓴 브루스 립턴은 의대에서 세포에 관한 것을 가르치던 교수였습니다.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 과학계에서 믿어오던 것은 인간의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에 걸릴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으면 그 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다 시골에서 교수로 있을 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힘겹게 몸을 움직여야 할 때 자기 제자 중 카이로프랙틱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팔을 올리게 한 다음 “나는 브루스입니다”라고 말하고 힘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 팔을 제자가 끌어내리려고 해도 잘 안되었습니다. 그는 과학자였기 때문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제자는 “이번엔 ‘나는 메리입니다’”라고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작은 힘에도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혼절할 것처럼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는 자신 안에 있는 유전자가 외부의 믿음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브루스인 것을 속이며 자신이 메리라고 말할 때는 DNA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자신 안에서 충돌할 때 세포로부터 당연히 나와야 하는 힘도 꺾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사람은 분명 유전자로도, 노력으로도 지배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지배됩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바꿔주러 오신 분입니다. 믿음이 사람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의 믿음을 받아들이며 그 믿음을 증명하며 삽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의 믿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브루스라는 이름은 그 부모가 준 믿음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이용하려 들지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향한 믿음을 믿읍시다. 이것이 더 나아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남들은 군대에 가면 고생해서 몸무게가 쫙 빠진다고 하는데, 저의 경우 신병교육대를 마치고서 10킬로 이상 살이 쪘습니다. 그래서 50킬로대의 몸무게가 거의 70킬로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게 군대 체질이 아니냐고 묻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밥 먹고 뒤돌아서면 바로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무조건 빨리, 또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더군요. 똑같이 먹고 똑같이 생활하는데도 전혀 살이 찌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먹지 않아도 될까요? 먹어도 안 먹어도 체중의 변화가 없으니 말입니다. 
 
어차피 화장실 가서 다 뺄 것이라면서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어차피 옷이 더러워질 것이라며 빨래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차피 지저분해질 방이라면서 청소 안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어차피 화장실을 가도, 어차피 더러워져도, 또 지저분해지더라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특히 이 해야 할 것을 규칙적으로 할 때, 화장실 가는 것도 또 빨래나 청소하는 것 역시 쉬워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 알아듣고 고개를 돌리면 잊어버린다는 분이 계십니다. 이렇게 잘 잊어버리는데 성경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하십니다. 매일 화장실 간다고 밥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주님 말씀이 전혀 이해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쓸모없다며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더 규칙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읽고 새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으려고 합니다.”(루카 13,31)라고 말합니다. 바리사이는 늘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죽인 후 늘 불안에 싸여 있었습니다(루카 9,7-9). 그래서 이제 자기 영지 안에 어떤 소요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이 다른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바리사이를 부추긴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직 죽음의 때가 오지 않았고, 아직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밝히십니다. 그 모든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뜻이라면 세상의 위협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반대되는 모든 세력에 동참하고 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만을 바라보며 힘차게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이 바라거나 믿는 바를 말할 때마다, 그것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당신이다. 그것은 당신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 당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향한 메시지다. 스스로에 한계를 두지 마라.

- 오프라 윈프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하느님의 계획을 만납니다.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의 마지막 삶이 다름아닌 예루살렘임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구원의 여정을 충실하게 걸어가시는 주님이십니다. 실행에 옮기시는 예수님을 통해 길을 찾아 열실히 걸어가는 많은 신앙인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떠날 때를 아는 것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만남이 됩니다. 삶의 소중한 가치는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한 내용의 가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받아들임의 삶을 온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갈릴래아도 예루살렘도 모두 스승으로 다가옵니다. 

필요한 것은 포용의 마음입니다. 사랑과 인내가 필요한 길입니다. 포용과 설득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십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예루살렘의 마지막 여정을 받아들이십니다. 

목숨을 건 구원의 여정에서 사랑의 열정을 만납니다. 복음도 열정이며 십자가도 열정입니다. 구원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행복한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열정을 불태우시는 사람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열정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열정의 시작이 십자가이며 용기임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과 같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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