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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0월 30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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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2022년 10월 30일 연중 제31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0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1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지혜 11장 22-26절, 12장 1-2절)
    주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십니다.

  • 제2독서
    (2테살 1장 11-12절, 2장 1-2절)
    그리스도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9장 1-10절)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0월 30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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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복음
루카 19장 1-10절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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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양창우 요셉 신부 강론

 

 

2022년 10월 30일 (일)
양창우 요셉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리백진 파비아노 신부 강론

 

 

2022년 10월 30일 (일)
리백진 파비아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캐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는 ‘세관장’이었습니다. 세관장으로 번역된 그리스 말 ‘아르키텔로네스’가 당대의 세금 징수 체계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세리들 가운데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 제국의 이익을 위하여 이스라엘 동족들을 착취하던 세리들은 온갖 미움과 멸시를 받았고 죄인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 세리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 자캐오는 특히 죄인 중의 죄인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부자였습니다.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였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예리코 사람들 사이에서 자캐오는 그야말로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작았던 자캐오는 군중에 가로막혀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작은’ 키는 마치 예리코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느꼈을 소외감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갈 자신이 없었던 그는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가 예수님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입니다.

그런 자캐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거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이 말씀이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감히 자기 집에 초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던 자캐오가 이제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사람들의 투덜거림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일어서서” 보란 듯이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재산의 절반을 나누겠다고까지 선언합니다. 이제 자캐오는 더 이상 소외된 자가 아닙니다. 그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서 결코 배제되지 않았음을 예수님께서 확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죄인으로 낙인찍힌 많은 ‘자캐오’가 있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 자캐오에게 일어난 변화는 예수님의 접근에서 시작됩니다. 두려워하는 자캐오에게 먼저 말을 건네시며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듯이, 예수님께서는 다른 ‘자캐오’들에게도 먼저 다가가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구원의 길을 막아서는 자들이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 구원 사업의 방해꾼이 아닌 협조자가 될 수 있도록 좀 더 우리의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의 여러 얼굴

 

사랑에 여러 얼굴이 있습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에게 후하게 상을 주는 후덕한 사랑이 있으며, 불의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회개하게 하는 정의로운 사랑이 있고, 잘못한 사람을 바로 응징치 않고 참아주는 너그러운 사랑이 있으며, 이웃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는 동병상련 또는 연민의 사랑이 있고 죄인의 악을 마음 아파하고 회개하였을 땐 용서하는 자비로운 사랑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완전하여 이 모든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은 우선 아파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도 아파하시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 더 아파하십니다. 

고통은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 오히려 나아가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 죄악은 자유의지로 하느님을 거스르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기에 하느님은 인간의 고통보다 죄악을 더 마음 아파하십니다. 

사실 육신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고통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게 하기에 구원에 유익하지만 죄악은 하느님을 거부하고 자비를 청하지 않기에 구제 불능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의 자캐오는 다른 죄는 지었을지라도 하느님의 자비를 갈망하는 면에서는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다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죄인과 자비를 청하지 않는 죄인이 있을 뿐이고, 죄를 뉘우치고 용서받는 자캐오 같은 죄인과 죄 없다고 생각하여 용서받지 못하는 바리사이 같은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어떤 죄인들인지, 자캐오처럼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그래서 자비를 입는 죄인들인지 죄 없다고 딱 잡아떼다 자비 밖에 있는 죄인들인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더 높은 행복을 위해 :
가끔은 다 내려놓고 잠시 나무 위로 올라가 봅시다.

 

로맹 가리(Romain Gary)는 세계 3대 문학상인 콩쿠르상을 2회 수상한 경력을 가진 유일한 인물입니다. 본래 콩쿠르상은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지만 로맹 가리는 다른 필명으로 두 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나 명예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많은 영예를 안았지만 1980년 권총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집필한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새벽의 약속’ 줄거리입니다. 

로맹은 어렸을 때 거짓말을 잘하기로 유명한 유대인 홀어머니 밑에서 컸습니다. 어머니는 로맹에게 “너는 커서 위대한 인물이 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대사가 될 것이고,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이고, 전쟁영웅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밀수품을 판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고당해 그는 아들을 데리고 마을 한 복판에서 아이가 반드시 영웅이 될 것이라 소리쳤습니다. 로맹은 그때가 가장 괴로웠던 순간이지만 그 이후로 정말 어머니 뜻을 이뤄드려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그 비웃음이 미래의 로맹 가리를 만들었습니다. 

로맹은 자신이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가 어머니 뜻에 맞지 않아 포기하고 법학을 공부하러 파리로 옵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도 말 수완을 발휘해 건물주가 됩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리 글을 써도 읽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들어가서 장교가 되기로 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안 됩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300명 중 유일하게 자신만 소위로 진급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거짓말로 아들이 잘나가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다닙니다. 

로맹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당뇨로 쓰러져가면서도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무언가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성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계속 아들에게 용기를 주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로맹은 점점 미쳐가며 모기를 잡겠다고 총을 쏴서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대로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썼으며 전쟁에서 영웅이 될 일을 찾았습니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그는 복부에 총을 맞고 조종사로서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큰 공을 세워 드 골 장군에게 훈장까지 받게 됩니다. 또한 군 복무를 하며 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며 어머니의 꿈을 모두 이뤄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어머니께 편지로 써 보내는데도 어머니의 편지는 계속 글을 쓰고 영웅이 되라는 격려뿐이었습니다. 몇 년 만에 어머니를 찾은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가 3년 전에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 250통이나 되는 편지를 써 놓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계속 그것을 붙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맹은 어머니의 뜻을 다 이뤄주고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행복하다고는 했지만, 66세에 자살했습니다.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가 행복이라 말하던 것을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을 알까요? 모두가 돈과 쾌락과 명예만 좇으며 지금 그것이 없으면 고통스러운 것이라 착각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관장 자캐오의 이야기입니다. 자캐오는 이 세상에서 돈이 최고라 여기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했습니다. 그것이 행복이 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무에 올랐습니다. 더 행복할 무언가를 찾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버리면 행복하다고 외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못마땅해합니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루카 19,1)

하지만 자캐오는 죄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루카 19,8)

바리사이들은 말할 것입니다. 

“죄를 지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게 낫다면, 그 죄 때문에 피해 본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중에 갚는 게 무슨 소용인가? 그들이 이미 고통으로 죽었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죄인들의 편을 들어주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루카 19,9-10)

사실 바리사이들도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캐오와 달랐던 것은 죄가 행복하지 않음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로맹도 끝까지 어머니가 요구하던 길이 행복이 아님을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감사했습니다. 자신에게 자존감을 심어주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나를 쓰레기로 여긴다면 확실히 쓰레기가 되지.”(『밤은 고요하리라』, 로맹 가리)

하지만 그러한 자존감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자존감도 수준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캐오는 이것을 찾을 줄 알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행복이 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죄를 짓습니다. 그 죄를 지으며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를 살펴야 합니다. 나의 감정에 솔직해야 합니다. 영화 ‘아이언 맨’의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마약을 배워 나이가 들어서도 그것을 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망가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영화도 망치고 여자도 떠나고 감옥에도 여러 번 들락거렸지만, 마약을 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마약을 끊게 된 계기가 있는데, ‘치즈 버거의 맛’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치즈 버거를 먹는데 치즈 버거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마약과 치즈 버거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 순간 가진 마약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가 마약 대신 치즈 버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아이언 맨은 탄생할 수 없었습니다. 

자캐오는 돈을 좋아하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았습니다. 자기를 섬기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자기 집에 모시고 그분의 뜻으로 자기 뜻을 죽이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하지만 가리옷 유다는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고통의 시작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죄를 지어도 돈이 행복이란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죄를 많이 지어야 죄가 고통임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고통인지 알려고만 하면 알 수 있습니다. 빨리 깨달을수록 덜 죄를 짓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면 왜 저렇게 아웅다웅 살았는지 이상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봅시다. 그러면 “무엇을 하면 행복할 거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찾다 보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더 행복하려는 사람만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청각 장애로 잡음을 들을 수 없어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

 

지난 1천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 1위는 누구일까요? 많은 위대한 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첫 번째 자리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있을 때 하나의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잘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청각 장애를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각 장애로 잡음을 들을 수 없어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 
 
자기의 청각 장애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한다 해도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하지만 불평불만을 한다고 상황이 좋아질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면 상황을 재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의 희망을 보게 되면서 좋은 상황을 찾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에디슨의 놀라운 발명은 언제나 부족함과 불편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학교도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신체적으로도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함과 불편함이 가득한 삶이었지만, 이를 재해석하면서 희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시작에 바로 감사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의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의 틀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자캐오는 세관의 세관장이고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위와 재산은 구원받는데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애썼습니다. 이 모습에서 구원은 복음을 듣고 주님 뵈옵기를 원하는 마음가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했으나 군중에 가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갈망은 구원의 길을 뚫을 수 있었습니다.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오른 것입니다. 
 
한 도시의 세관장이며 내로라하는 부자가 채신머리없이 나무에 기어 올라간 모습은 분명 점잖지 못하다며 손가락질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체면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정이 예수님 눈에 보여서 이런 말을 듣습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자캐오는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을 맞이하기 전 준비로 재산에 대한 애착심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주님께 약속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주님의 은혜를 먼저 받아야 따르겠다고 하지 않나요? 
 
우리 마음에 머무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이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포기할 때 자신이 성공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모른다.

- 토마스 A. 에디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불러주어야 할 소중한 이름이 있습니다. 사랑받고픈 자캐오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시는 예수님께 얼른 내려와야 할 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내려옴의 방향이 참된 삶의 방향이 됩니다. 

내려와야 만나게 되는 사랑 가득한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부여잡고 있는 것을 버려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만남도 익어갑니다. 예수님과 한번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는 우리들 삶을 깨우는 첫시작은 부여잡고 있는 것을 이제 우리가 놓는 것입니다. 

베풀고 나누는 자캐오로 돌아갑니다. 참된 회개는 오늘을 기쁘게 사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랑을 놓치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얻었다고 벌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되찾는 오늘 사랑을 실천하는 회개의 멋진 주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모든 새로운 변화는 기쁨에서 시작되며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은 모든 것을 새롭게 나누게 합니다. 새롭고 기쁜 나눔의 기쁜 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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