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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0월 26일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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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네.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2022년 10월 26일 (수)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0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페 6,1-9)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섬기십시오.

  • 오늘 복음
    (루카 13,22-30)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0월 26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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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복음
루카 13장 22-30절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희전 루케치오 신부 강론

 

 

2022년 10월 26일 (수)
박희전 루케치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강론

 

 

2022년 10월 26일 (수)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문을 닫은 집주인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일이야 당연하겠지만, 비유에 등장하는 문밖에 선 이들은 집주인과 꽤 친분이 있어 보입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식사도 함께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가르침도 즐겨 듣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곧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문 앞에서 오히려 단호하게 거부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우리는 성찬 전례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말씀 전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 듣습니다. 미사는 우리의 구원 여정에 주어진 최상의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미사 참례가 자동으로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닮아 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또 그분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과 그저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를 뿐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문이 넓은 문이라면 참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리고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애쓰며 노력하라고 주문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친분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결국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문밖에 서서 ‘울며 억울해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강하게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 들읍시다. 문 안팎의 온도 차가 매우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오늘 어떤 사람이 주님께 구원받을 사람에 대해서 묻습니다. 

많은지, 적은지. 

이에 주님께서는 좁은 문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문이 좁다는 말씀인데 왜 좁습니까? 주님께서 문을 좁게 만드셨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까? 

제가 자주 강조하는 말이, 구원받는 것은 받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을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시고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시는 공평한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우리 문제입니다. 줘도 받아들여야지 받는 것이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주셔도 받지 못하는 것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시는데 왜 받지 않습니까? 그 이치는 아주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무엇이건 우리는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서의 구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구원이라면 그 문이 좁지 않을 텐데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 문이 좁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 세상 살 때 주님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으며 주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였다고 하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이 세상 끝 날에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하고 하느님 나라에서 내치십니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먹기도 마시기도 한 사람이 우리가 아닙니까?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영락없이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는 매주 또는 매일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고, 매일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의를 저지른다면 그것이 다 헛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과 먹고 마신 것이 영적인 힘이 되고, 그 힘으로 주님께 들은 말씀 곧 사랑을 실천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오히려 불의를 저질렀다면 아무리 천주교 신자라도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씀을 끝으로 주님께서 하십니다. 첫째 곧 주님을 알고 지내던 사람이 꼴찌 되고, 꼴찌 곧 주님을 모르고 지내던 사람이 첫째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주님을 알고 지내도 소용없고 주님 말씀대로 사랑해야 사랑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좁은 문은,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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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음악을 잘 듣지 않지만 그래도 음악을 듣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차 안입니다. 차 안 라디오를 이용해서 음악을 듣는데, 주로 클래식을 듣습니다. 조용한 클래식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운전하는 데 더 집중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차 시동을 켜자 클래식 음악이 아닌 최신 가요가 나오는 것입니다. 클래식 전문 방송이기에 당연히 클래식이 나와야 하는데, 최신 가요가 나오니 ‘방송국에서 음악을 잘못 틀었나?’ 싶었습니다. 
 
확인해보니 방송국에서 잘못 틀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 다른 신부에게 차 운전대를 맡긴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방송 주파수를 바꾼 것 같습니다. 
 
클래식 방송을 들으려면 클래식 방송이 나오는 곳으로 주파수를 맞춰야 합니다. 주파수도 맞추지 않으면서 클래식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 주파수를 맞춰야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 것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으면서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 주파수를 맞춘다는 것은 주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삶, 평화와 기쁨의 삶을 살면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야말로 주님께 주파수를 맞춰서 매 순간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참 기쁨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주님께 주파수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좁은 문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입니다. 단순히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모른다.”(루카 13,25.27)라면서 내치실 것입니다. 
 
유다인은 스스로 선택된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자기들 외에 구원받을 사람은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생각과 정반대로 구원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이방인들이 오히려 역전되어 구원받을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세상은 물질과 세속 중심이기에 사랑 중심인 주님의 뜻과 반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반대를 받아 힘든 상황에 부닥쳐지게 됩니다. 그래도 이 좁은 문을 향해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이 문 안에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진정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 넬슨 만델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다.

 

우리자신의 삶을 바로보는 시간입니다. 주님께로 너무 멀어진 우리들 삶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다시 직시하게 만드십니다. 말씀과 실천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첫째와 꼴찌의 방향은 사뭇 다릅니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을 향하는 마음을 매순간 일으키는 것이 첫째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자세를 다시 한번 되살펴보게 됩니다. 용기와 결단이 마음을 다시 살리는 믿음의 실천이 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꼴찌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우리자신의 제자리를 찾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실천과 거리가 먼 악습을 멈추는 것입니다. 생활은 비좁고 불편해도 마음이 행복했던 그 첫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첫마음의 시간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 있음에도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어리석은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마음을 기르는 마음의 새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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