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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6월 25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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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22년 6월 25일 (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모세는 백성에게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6월 25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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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시고 모인 사람들을 지켜 주시니 남북으로 갈라진 저희 민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평화 통일을 이루어 주시고 흩어진 가족들이 한데 모여 기쁘게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18장 19ㄴ-22절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정세덕 아킬레오 신부 강론

 

 

2022년 6월 25일 (토)
정세덕 아킬레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정순택 베드로 주교 강론

 

 

2022년 6월 25일 (토)
정순택 베드로 주교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무한한 자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18장은 교회 공동체에 관한 설교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님의 자녀인 우리가 청해야 하는 주된 내용은 ‘형제에 대한 용서’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 문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셨고(18,18 참조), 복음에서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그야말로 ‘무한한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조건 없고 한정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 용서받은 우리는 또한 형제들을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갈라진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용서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과 용기를 청합니다. 

우리에게는 용서가 참으로 어렵고 힘들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용서하고자 간절히 기도하고, 사랑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과 함께하십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용서와 사랑의 삶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횟수를 세지 말라.

 

아프리카 정글에서 학자들이 의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많은 종류의 짐승들을 한 종류씩 없애 보기로 한 것입니다. 
 
먼저 새를 없애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새소리가 없어지면서, 정글은 마치 공동묘지처럼 적막한 숲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원숭이들을 쫓아냈습니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나뭇가지를 꺾으면서 숲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숭이가 떠난 숲은 나무들이 서로서로 엉키면서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징그러운 뱀들을 다 제거했습니다. 그러자 천적이 없어진 쥐들이 그 숲에서 판치며 날뛰기 시작했고 쥐들로 인해 해충을 잡아먹던 벌레들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숲이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학자들은 모든 것이 함께 살아갈 때 건강하고 질서가 잡힌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자가 서로 도우며 함께할 때 건강하고 질서가 잡힙니다. 
 
자동차에는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이 함께 있습니다. 만약 가속페달만 있다면 어떨까요? 멈출 수가 없어서 계속 앞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금방 커다란 사고가 날 것입니다. 또 브레이크페달만 있다면 어떨까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늘 그 자리에 서 있어야만 합니다. 자동차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며, 이렇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봉헌합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이후 분단된 우리나라는 아직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남과 북으로 오랫동안 갈라져 있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또 서로를 향한 미움과 적대적인 말과 행동도 계속되었습니다. 상대가 없어야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용서를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일흔일곱은 단순히 일흔일곱 번 용서하고 그다음부터 미워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무한정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횟수를 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모든 친구는 우리 안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들이 오기 전에는 없었던 세계, 만남을 통해서 태어나는 새로운 세계를.

- 아나이스 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마태 18, 21)

 

어울려 살아야 할 형제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이며 용서이다. 용서는 비방을 멈추는 데서 시작한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화해와 일치이다.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길은 우리가 한가족이라는 공통분모를 우리가 되찾는 일이다. 

우리는 적(敵)이 아니라 가족이다. 주고받는 실천으로 가족의 화해는 조금씩 이루어진다. 그만큼 서로간의 신뢰형성이 중요한 가족의 관계이다. 올바른 기도와 바람직한 실천적인 노력이 함께 잘 살 수 있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영광의 참된 길이다.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 만나는 상호존중과 이해이다. 우리는 서로 저마다 자기 것만 옳다는 사상적 이념적 편향성을 내려놓는 경청과 변화의 회개가 필요하다. 회개는 지혜와 협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이와같이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역사적 소명이다. 

분단의 벽을 허무는 기도의 새 날이다. 기도의 실천은 모순의 역사를 통일의 새역사로 바꾸는 가장 큰 중심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민족의 일치이다. 하느님께서 앞장서시는 화해와 일치의 기도이다. 기도는 일치를 위한 가장 좋은 역사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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