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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6월 27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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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

 

 

2022년 6월 27일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그들을 짓눌러 버리실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6월 27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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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다시는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언제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8장 18-22절

 

나를 따라라.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19 
그때에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21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기호배 맛세오 신부 강론

 

 

2022년 6월 27일 (월)
기호배 맛세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6월 27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너는 나를 따라라.

 

한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에게 예수님의 존재는 말씀과 행동으로 그를 가르치고 이끌어 주시는 ‘스승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께 배우기를 바랍니다. “어디로 가시든지”라는 표현은, 온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시던 예수님의 일상을 떠오르게 합니다(마태 4,23; 9,35 참조).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예수님께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미 ‘주님’이십니다. 그런 그에게 당장 해야 할 중대한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장례’라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인륜대사의 중요한 의무마저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드시며 당신을 따르라고 명하시는 이 분은 도대체 누구이십니까? ‘주님’이시고, ‘하느님’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집’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구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주님이시며 또한 생명의 주님이시기에 죽음과 삶은 오직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을 알고 믿으며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고백을 기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스승’이시며 ‘영원한 생명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무엇보다 먼저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인데 어제 루카복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제 루카복음에 있는 내용 중에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내용이 빠져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은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라는 말과 같이 앞뒤좌우를 보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보라는 말이고,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 마태오복음은 과거-미래의 이 표현을 빼고 그저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제자에게 주님께서는 그저 “너는 나를 따라라.”고만 하십니다. 

‘먼저’ 장사 지내는 일을 한 다음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니 ‘지금’ 네가 할 일은 장사지내는 일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것이고, ‘먼저’ 해야 할 일도 장사지내는 일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태오복음은 루카복음에 비해 과거-미래 관점보다는 현재를 강조하고, 현재 무엇이 더 우선적이냐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과거지향적인 것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것이 좋지만 아예 미래도 과거처럼 따지지 말고 그저 현재를 살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정말로 중요하다면 지금 그것을 하면 되지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종종 과거 때문에 현재를 망치고, 미래 때문에도 현재를 놓치곤 합니다. 

그리고 과거 때문에 현재를 망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면서 미래 때문에 현재를 놓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저는 단지 미래 걱정 때문에 현재를 불행하게 사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래를 허황되게 계획하고 설계하면서 현재의 불충실을 합리화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미래 걱정이나 허황된 미래 설계를 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 미래를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저는 하는 겁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면 현재에 ‘영원’이 있기 때문이고 이런 현재 안에는 과거와 미래가 다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일은
어제도 하고,
지금도 하고,
내일도 하고,
모래도 해야 할 일입니다. 

어제는 저것이 중요하고,
오늘은 이것이 중요하며,
내일은 또 다른 것이 중요하다면,
그런 것들은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중요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인데 제일 중요한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없다고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신을 따르는 것이라고 오늘 주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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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을 따르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먼저이다.

 

어느 주인이 자기 종에게 감자 수확할 시기이니 밭에서 감자를 다 캐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종은 아주 일을 잘하고 주인의 말에 철저하게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자를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캐서 쌓아놓은 뒤 주인에게 보고했습니다. 주인은 일 잘하고 순명하는 종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구덩이 두 개를 파고 네가 판단해서 큰 감자와 작은 감자를 구분해서 넣어라.” 
 
그런데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해졌는데도 종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감자밭에 나가보니, 종이 구덩이 두 개를 파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이유를 물으니, 큰 감자와 작은 감자 구분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시킨 일은 하겠는데,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는 것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의 삶입니다. 종종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 순명이라고 겸손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종의 삶의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 뜻과 의지를 세워 행동하면서 그 자리에 하느님을 초대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도 종의 삶입니다. 어렵고 힘들어서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삶입니다. 포기가 아닌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는 굳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친구이신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친구이신 주님을 모시면서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의지를 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는 한 율법 학자의 말에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사람이 종을 거느릴 수 있을까요? 종이 아닌 친구만이 함께할 수 있는 여건임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길 원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장사까지도 뒤로 미룰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하지요. 주님을 따르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 먼저라는 것입니다. 
 
친구이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세우면서 계속 변화되는 삶을 통해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종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들면 포기하고 좌절하는 종의 삶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친구이신 주님과의 진정한 우정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가장 제대로 따르는 모습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이다.

- 마더 테레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마태 8, 20)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다.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아픔을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대신 채워주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은 머리 기댈 곳을 두지않는 따름이다. 절대고독 속으로 먼저 들어가 하느님을 만나신다.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을 통해 하느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고독을 즐기시는 예수님 내면의 여정이다. 고독함으로 하느님 말씀을 듣게된다. 하느님과 가까워 진다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독하신 주님과 함께 살고 있다. 하느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하는 고독이다. 삶을 더럽히거나 우롱하지 않게하는 고독이다. 

고독으로 다시 보게되는 예수님 십자가의 뜨거운 상처이다. 뜨거운 고독이 뜨거운 기도임을 믿는다. 예수님을 따르는 뜨거운 눈물 고독이다. 곁가지를 쳐내는 방식 고독이며 더 깊어지는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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