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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8월 22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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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2022년 8월 22일 (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실바누스와 티모테오와 함께, 테살로니카 사람들의 교회에 인사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위선자이며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하시며 그들이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8월 22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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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저희 어머니요 모후로 모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분의 전구로 보호를 받아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 자녀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23장 13-22절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송준회 베드로 신부 강론

 

 

2022년 8월 22일 (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송준회 베드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8월 22일 (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우리는 모두 용서받은 죄인들.

 

‘바리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페루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말은 ‘분리된 사람’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어디에서 분리된 사람일까요? 하느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분리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많은 백성은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율법 규정과 조항들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페루심, 곧 분리된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집필할 당시에 교회 공동체가 크게 두 가지 위기를 겪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외부적인 것으로 대대적인 박해에 직면한 교회에 많은 배교자가 생겨났고 신자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부적인 것으로 율법주의, 곧 지난날처럼 법의 준수로 위기의 교회를 지켜 내려는 풍조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박해보다 더 크고 위험한 문제였습니다. 바리사이의 노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종교가 점점 더 엄격해지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죄인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종교가 아니라 소수의 열성분자들이 고안한 종교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 종교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점점 더 엄한 심판관이 되십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토록 말씀과 실천으로 가르치시고 보여 주셨던 하느님, 곧 사랑이 넘치시는 하느님,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더욱이 자칫 율법의 준수가 구원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한참 멀어지게 됩니다. 구원은 선물이지, 대가나 거래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바리사이들처럼 ‘나는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라는 생각은 없는지 성찰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불행한 줄 모르는 불행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오늘 주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저주를 퍼부으신 것이 아닙니다. 저주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깨우침입니다. 

이들은 어쩌면 한 번도 자기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것이고, 한 번도 자기들이 잘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소름이 돋습니다. 불행한 줄 모르는 불행을 그들에게서 봤고, 저도 마찬가지로 불행한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불행한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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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첫 마음을 잃지 말고 우리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해.

 

우연히 어느 지역에 갔다가 오래된 식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식당이 어떤 곳인지 곧바로 기억났습니다. 30년 전 신학생 때, 본당 신부님께서 데리고 갔던 중식당이었습니다. 너무 고급스럽고 가격도 비싸서 그 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식당이지만, 너무 맛있었기에 그 맛을 잊지 못했던 곳입니다. 그 옛날을 떠올리며 비록 혼자였지만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옛날 그 자리에 계속 운영 중인 식당이었지만,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는지 이제는 너무 낡고 옛날 풍의 느낌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비싼 가격이 아니라, 이제 보통 가격 수준이더군요. 
 
그렇다면 맛은 어떠했을까요? 옛날 그 맛이 아닌, 평범했습니다. 아마 그때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는 때였고, 그래서 보통 맛보다 더 뛰어난 맛이었기에 최고의 맛으로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을 기억하게 해주는 고마운 장소라서 다시 찾아올 것 같습니다. 
 
문득 시간이 지나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해 봅니다. 변함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계속 바뀌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점은 계속 좋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을 흠뻑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눈먼 인도자라고 하시면서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을 꾸짖습니다. 사실 율법의 세부 조항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그들의 삶은 그 어떤 사람도 따라 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런 열정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행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남들을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으며, 자기들은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면서 그 안에서 자유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기만을 사랑하는 아주 이기적인 위선자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이러한 ‘불행 선언’을 듣고서 좋아했을까요? ‘맞다. 우리가 이렇게 이기적인 위선자였구나.’라면서 회개해서 다시 하느님 뜻에 맞는 생활을 바꿨을까요? 
 
예수님도 그들이 변화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변화되지 않았기에 자신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끈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기적인 위선에서 벗어나, 처음에 주님을 통해 얻었던 열정과 사랑을 계속해서 실천할 것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첫 마음을 잃지 말고 우리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이 화내는 1분 동안, 당신의 행복 60초가 사라진다.

- 랠프 월도 에머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마태 23, 19)

 

하나의 진리처럼 맺어지는 소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기도이며 어머니의 세월이 아들의 십자가를 끝까지 받아내신다.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는 하늘 나라의 사랑을 만난다. 

고통이 깊을수록 선명해지는 어머니의 믿음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마음이다. 어머니는 마음에 있는 믿음을 십자가로 옮겨주신다. 십자가는 가장 거룩한 사랑의 약속이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약속이다.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어머니를 통해 보여주신 구원의 약속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어머니 십자가의 기도 십자가의 구원을 믿는다. 어머니의 뜻은 구원이다. 어머니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구원을 믿었다. 십자가의 어머니 십자가의 아들 예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인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구원은 받아들임에서 시작되는 십자가의 약속이다. 

십자가는 그 누구도 속이지 않는다. 서로를 구원할 뿐이다. 소중한 것은 구원이다. 구원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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