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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8월 23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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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2022년 8월 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그들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을 선언하시며,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실행하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8월 23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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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23장 23-26절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장대건 대건 안드레아 신부 강론

 

 

2022년 8월 23일 (화)
장대건 대건 안드레아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강론

 

 

2022년 8월 23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오늘 하루 자신을 들여다보기

 

마태오 복음에는 “행복하여라.”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행복 선언(산상 설교의 시작, 마태 5,3-12 참조)의 말씀과 “불행하여라.”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말씀(마태 23,13-37 참조)이 나옵니다. 복음 안에서 이 두 선언이 서로 교차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맞서고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의 길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일곱 가지 불행한 삶에 관한 말씀 가운데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경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의 위선의 가면을 벗겨 내십니다. 위선자는 한마디로 연기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위선자의 행동에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자 하는 목적과 지향이 담겨 있습니다. 위선의 깊은 뿌리에는 자기애와 자기만족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주의는 정확히 참사랑과 반대됩니다.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땅히 옳은 일, 명시적인 바른 규정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 경우 모든 사람이 그것은 잘못된 일이고 그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 다른 방식의 악행이 있는데, 이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훨씬 더 나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불행하여라.”라고 하신 말씀에 해당하는 일들입니다. 이를테면 법의 준수라는 가면을 쓰고 저지르는 숨은 악행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겉으로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아 스스로 만족해하지만, 실제로는 작고 약한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양심을 해칩니다. 

‘십일조 규정은 지키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더 중요한 하느님의 법은 지키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오늘 하루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특히 의로움과 신의 사이에 있는 중심 말씀인 ‘자비’에 대하여 더 많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욕심의 관심과 사랑의 관심.

 

“불행하여라. 너희가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희가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어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불행에 대해 얘기하면서 불행한 줄 모르는 그들의 불행에 대해서 봤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들의 불행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불행한 이유로 두 가지 경우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율법에서 더 중요한 계명은 무시하고 덜 중요한 계명을 중시하는 어리석음의 불행과 가치 전도의 불행을 꼬집으십니다. 

둘째는 겉은 깨끗이 닦으면서 속마음은 더러운데도 그대로 놔두는 잘못이랄까 위선의 불행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들의 어리석음과 잘못이 무지해서 그러니까 배우지 못해 그런 걸까요, 배울 만큼 배웠고 그래서 알만 한데도 영적으로 부덕하기에 그런 것일까요? 

분명하지요. 무지해서 그런 것이라면 주님께서 그렇게 호되게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상하게 가르쳐주셨을 겁니다. 

주님께서는 어제부터 이들을 위선자와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위선자라고 하면 무엇이 선이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은 또는 그의 속은 그렇지 않기에 겉꾸밈 하는 겁니다. 

그리고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욕심에 눈이 먼 것을 말함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모두 욕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인간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이지요. 사랑의 관심과 욕심의 관심인데 이들은 욕심 때문에 흔히 얘기하듯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 같은 율법에는 관심이 없고, 십일조에 관심이 있어 가치가 전도되고, 욕심 때문에 속은 탐욕과 방종으로 악취가 나는데 겉은 깨끗이 씻고 향수를 발라 더러움과 악취를 감춥니다. 

문제는 속의 더러움과 악취를 제거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없는 것이고, 그렇게 욕심에 눈먼 상태에서 인도자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것이며, 그래서 자기도 천국에 들지 못하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의 문제입니다. 남 얘기로 흘려들은 것인가? 나의 얘기로 받아들일 것인가?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처럼 지도층은 아닐지라도 가까이는 자녀를 인도하는 부모들이고, 이웃을 신앙에로 인도해야 할 사람들인데 사랑의 관심보다 욕심의 관심이 더 많은 우리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안전운전이 보험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

 

어느 권사님의 가정에 복면강도가 들어왔습니다. 잠자고 있던 권사님이 일어나 보니 복면한 사람이 가슴에 칼을 겨누며 말하기를 “조용히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태연한 자세로 강도의 손을 잡고 “하나님,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앞으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친 권사님은 강도에게 말하기를 “나는 ㅇㅇ 교회 권사인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라고 묻자 강도는 권사님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며칠 전에 교도소에서 출소해 나왔는데, 갈 곳은 없고 직장도 없는지라 손수레를 하나 구해서 장사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권사님의 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강도의 말을 들은 권사님은 손수레값을 주면서 말하기를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고 부디 성공하여 잘 살아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강도는 권사님의 말에 감동하여 복면을 벗고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강도가 밖으로 나가자 권사님도 따라 나왔습니다. 날씨도 차가운데 들어가시라 했지만 괜찮다며 사거리까지 나온 권사님은 부디 성공하라며 손을 흔들어주며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즉시 그 옆에 있던 파출소에 들어가 신고하여 그 강도를 잡게 했습니다. 권사님의 얼굴을 본 강도는 어이없어서 입술을 깨물며 지긋이 떨었습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천사 같은 모습으로 기도해주며 성공하라 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들은 “저런 게 무슨 교회 권사야?” 하면서 욕했습니다. 권사님은 돈은 찾았지만 자비와 정의와 사랑은 잃고 말았습니다.

[출처: 외식, 위선에 관한 예화 모음, 한나, 네이버 블로그, ‘With the Lord’]

물론 위 권사님은 그래도 정의는 이뤄져야 한다고 여겼겠지만, 누가 봐도 돈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에 더 큰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1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꼬집으십니다. 그들은 작은 벌레들은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마태 23,23)

이는 마치 운전자 보험을 믿고는 난폭운전을 해 대는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보험이 안전 운전해야 한다는 의무를 없애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안전 운전이 자동차 보험을 면제해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안전 운전하려고 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리고 운전자 보험이 들어있어야 마음이 편안하여 더 안전 운전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긴장되어 운전이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톨릭교회는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와 같은 것들을 더 강조하며 십일조를 잊어버렸습니다. 사실 십일조를 통해 더 의로워질 수 있고 자비로워질 수 있고 신의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이라고 하신 말씀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중요하니 그물을 고치는 것은 나중에 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촉나라는 땅이 비옥하고 물자가 많기로 소문난 부국이었습니다. 일찍부터 촉나라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진나라 혜왕은 촉나라를 정벌하겠다는 야심은 가득했지만, 촉나라로 향하는 길은 대부분 좁은 벼랑이거나 산길이어서 진나라의 대군이 공격해 들어가기에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진나라 혜왕이 촉나라를 정벌하고 싶어 고민하다 신하들을 모아놓고 전략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 비옥한 촉나라 땅을 얻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소?”

모두 그 답답함에 말을 잊지 못했는데 이를 보던 신하 한 명이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강한 공격보다는 지혜로써 촉나라를 정벌해야 합니다.”

이에 진나라 혜왕이 그 방법을 묻자 신하는 대답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촉나라 왕은 물욕이 대단하다 들었습니다. 임금께서 대단한 선물을 할 것처럼 그 환심을 사고 허점을 파고들면 촉나라를 정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진나라 혜왕은 곧바로 촉나라 왕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척 작전에 돌입합니다. 먼저 옥이 나오는 산에서 엄청난 큰 옥을 캐어 운반한 다음 황소를 조각합니다. 이후 옥으로 만든 소 안에는 금은보화와 비단을 가득 담고 촉왕에게 전할 것이라고 소문을 냈습니다. 이 소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커다란 옥우를 보러 몰려들었고 촉왕도 이내 그 소문을 접합니다. 

“진나라 혜왕이 짐에게 보낼 보물을 만들고 있다고? 기쁘네그려!”

소문을 들은 촉왕은 너무나 들떴고 진나라 혜왕을 믿지 말라는 신하들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진나라에서 사신이 도착합니다. 

“저희 왕께서 촉나라와 진나라의 관계를 우호로 만들고, 촉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큰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아마 이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큰 옥으로 만든 소로 그 도면과 목록을 들고 먼저 오게 되었습니다.”

보물 목록을 본 촉왕은 기뻐하며 말합니다. 

“그 보물을 언제쯤 볼 수 있겠소?”

“보물은 거의 준비가 되었지만 문제는 이곳으로 어떻게 운반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시다시피 촉나라로 통하는 길은 너무나도 협소하여 계곡에서 잃어버릴 위험이 많고 손상될 것 같아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해서 족히 2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아니, 귀국이 우리 촉국을 위해 보물을 옮기는데, 힘들면 안 되지. 산을 깎고 계곡을 묻어 큰길을 만들어주겠소.”

이에 진나라 사신은 감사함을 표하며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날부터 촉의 백성은 큰길을 만들고자 죽을힘을 쏟았습니다. 이에 신하들의 반대 목소리가 컸으나 보물에 눈이 먼 촉왕은 이를 다 무시합니다. 마침내 촉으로 향하는 큰길이 완성되지 진나라 혜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큰 옥우와 함께 이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병사 수만을 호위하게 하였습니다. 

촉으로 향하는 진나라의 병사들은 큰 질로 진군할 수 있었고 촉의 도성 안에 쉽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도상 안에 들어온 진나라 군대는 돌변하여 촉나라의 군대를 쳐부수고 촉나라를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옥우라는 자신의 나라보다 훨씬 작은 보물에 눈이 멀어 큰 나라를 잃어야 했던 촉왕, 그를 향한 고사성어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영혼의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탐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내가 하는 모든 영성 생활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가리옷 유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러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보험으로 들어놓으라고 하는 것이 선악과를 봉헌하는 일입니다. 곧 십일조를 바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면 모든 것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하기에 탐욕에 물들어 그리스도를 버리는 일은 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무라시는 것은 십일조를 바치면서도 탐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들의 위선을 짚으시는 것이지 그것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올바른 정신으로 바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보험을 들었다고 난폭운전을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 보험을 들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보다도 우선 그 뿌리를 흔들리게 만드는 탐욕을 끊는 보험인 십일조를 봉헌하는 일입니다. 선악과를 바치지 않으면 에덴동산에서는 언제 쫓겨날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전주시 노송동 주민 센터 부근에는 성탄절 전후로 천사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천사는 주민 센터에 전화를 걸어 현금과 돼지 저금통이 든 종이 상자를 놓아둔 위치를 알려주지요. 그 일을 벌써 22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0년 4월, 초등학생이 58만 4천 원이 든 돼지 저금통을 주민 센터 민원실에 맡긴 것을 시작으로, 작년 12월까지 그 금액은 자그마치 8억 872만 원에 이릅니다. 전화 거는 사람이 다양한 것을 보면 온 가족이 함께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물론 언론에서도 이들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한사코 몸을 숨겼고, 주민 센터 측도 그 의사를 존중해서 신원확인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신원 공개를 거부하고 큰돈을 기부했던 이 가정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기부금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세상에 드러내면서 다른 사람의 기부를 더 많이 이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면적 합리성보다 그저 실천하는 사랑 자체에만 집중하고 계셨습니다. 기왕이면 보이기 위한 사랑을 하는 우리 현대인의 마음을 흔드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을 향한 ‘불행 선언’입니다. 특별히 십일조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십일조는 본래 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레위족과 불쌍한 과부, 고아, 외국에서 귀화한 이민족들을 돕기 위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십일조의 근본정신은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과 같은 하찮은 푸성귀를 바치면서 십일조를 바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작 십일조의 근본정신인 사랑은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작은 율법 조항을 지킨다고 자찬하면서도 중대한 하느님의 계명을 소홀히 하기에 불행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겉치레에만 신경 쓰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지금의 우리 모습은 아닐까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시고도 ‘불행 선언’을 선포하시지는 않을까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데 얼마나 성실했는지를 다시금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자그마한 실천만으로 모든 사랑을 실천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시작은 마음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 자체만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행복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제임스 베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마태 23,25)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는 삶이 결코 아니다. 탐욕과 방종의 끝은 늘 좋지 않다. 왜곡된 욕망을 바로잡아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이기적인 탐욕과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방종을 깨끗이 하는 마음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바로잡아 주신다. 이기적인 탐욕에서 파생되는 모든 억압과 착취 부자유와 파괴이다. 

우리 마음은 잔과 접시같이 비워내고 깨끗이 해야 하느님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모두는 떠나가는 존재들이다. 성숙과 완성을 향해 나가야 할 하느님을 닮은 인격체이다. 

하느님을 닮은 인격체는 하느님을 향한다. 욕망이라는 본능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회개로 새로워지는 사람들의 여정이다. 결과 보다 과정을 즐기는 행복한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목표달성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오지 않는 미래나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는 소중하고 행복한 오늘이다. 불행과 행복 사이에 본능이 있고 기도와 회개가 있다. 행복은 깨끗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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