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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6월 18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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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

 

 

2022년 6월 18일 (토)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요아스 임금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친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를 죽이자,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임금을 살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며,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6월 18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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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6장 24-34절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기호배 맛세오 신부 강론

 

 

2022년 6월 18일 (토)
기호배 맛세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022년 6월 18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결국 우리를 다스리고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되며 귓가에 맴도는 주님의 말씀은 “걱정하지 마라.”입니다. 이 말씀의 근거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곧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분께서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당신 자녀들의 어려움과 고통, 눈물과 아픔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에게 몸소 마련해 주시며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 대한 굳은 믿음입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소중한 아드님마저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환호송처럼,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유한 자녀들이고,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이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을 더욱 닮아 가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이며 주님의 종 다윗에게 전해진 시편의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시편 89[88],29)라는 말씀은 하느님 아버지의 귀한 자녀인 우리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날마다 무거운 수고와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어떻게 하면 걱정없이 살 수 있을까?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어떻게하면 걱정없이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떠나지 않는 우리 삶을 생각할 때 이 문제는 행복의 열쇠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는 즉시 걱정거리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 생각에 많은 경우 사서 걱정한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고 오늘 주님께서도 비슷한 취지에서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걱정은 내일 것을 앞당겨하는 마음 고생이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괜히 하는 마음 고생이고, 신앙적으로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는 쓸데없는 마음 고생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 특히 엄마는 자식이 집을 나설 때부터 걱정합니다. 이때의 걱정은 물론 사랑이지만 다른 경우, 상당수의 걱정은 욕심의 산물이고 그리고 신앙인의 경우는 불신의 결과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은 성인의 대표가 성녀 클라라입니다. 아시다시피 클라라는 가난 특전을 교황청에 청했습니다. 

가난 특전이란 가난 서원을 지키지 않는 특전이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정신대로 가난을 살 수 있는 특전이지요. 

클라라는 어쩌면 프란치스코의 가난보다도 더 철저한 가난을 살고자 했지요. 

프란치스코는 아무 소유없이 그리고 정처없이 가난을 철저히 살고자 했지만 클라라는 남자들처럼 떠돌아다닐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수도원 안에서 살되 외부로부터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이 그때그때 주어지는 대로 하루하루 살고자 다시 말해서 하루살이를 하고자 했는데 그렇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한 것이 가난 특전이지요. 

왜냐면 주교들이 그것은 너무 엄격한 가난이고 불가능하다고 자주 클라라에게 완화된 가난을 살라고 사랑과 염려의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클라라는 가난을 끝까지 고수하였는데 그것은 자비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인간 애비도 제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고, 풀과 새에게도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간에겐 더더욱 필요한 것을 주실 거라는 믿음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께 대한 이 믿음은 고통과 죽음을 주셔도, 지금은 그것이 악이어도 내일의 내게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기에 주신 것이고, 내일의 고통과 죽음도 모레의 내게 좋고 필요한 것이기에 주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걱정, 곧 앞당겨 하는 마음 고생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걱정은 내가 아니라 '내일'이라는 자가 하는 거라지 않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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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음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보기

 

제 무릎에는 커다란 상처 자국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생긴 상처인데, 넘어졌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어이가 없습니다. 
 
동창 신부와 자전거를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동창 신부가 앞서가고 있었는데, 돌부리 위를 휙 지나가는 것입니다. 저 역시 동창 신부처럼 휙 지나가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겁이 났습니다.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결과는 예측대로 이곳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겁이 나서 손으로 브레이크 레버를 확 잡았을 때 미끄러진 것입니다. 자전거에 제 몸을 온전히 맡기지 못했습니다. 자전거를 믿지 못해서 작은 돌부리에도 겁을 낸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삶 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두려움 속에 살게 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함께하시는데도 주님은 보지 않고 작은 돌부리와 같은 장애물만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믿음의 눈으로 주님께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쓸데없는 두려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걱정하지 마라.”라고 강조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는 단순히 무심함이나 무관심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모든 근심 걱정에서 해방해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새들과 들에 핀 나리꽃들을 예를 드시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결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떠올리면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는 사람은 굳은 믿음을 통해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삶의 방향을 정확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많은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걱정하고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 힘든 시간의 연속성 안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걱정과 두려움은 하느님 나라를 바라볼 때 별것 아님을 깨닫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노력을 통해 조금씩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믿음은 세상의 가면을 벗기고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드러낸다.

- 샤를 드 푸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마태 6, 34)

 

걱정하는 이 마음을 통해 진정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게 된다. 좋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또 내일을 주신다. 오늘을 주신 것같이 내일을 우리에게 주신다. 오늘을 건너갈 힘을 주시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주신다. 

걱정이 아니라 믿음을 배우는 삶의 모든 시간들이다. 우리의 삶이란 소중함을 되찾는 여정이다. 소중함과 존귀함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자라난다. 믿음의 길이 존귀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들에 핀 나리꽃들과 들풀까지도 입히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 

만남을 통해 드러나는 믿음의 다양한 빛깔들이다. 믿음이 씨앗이고 열매이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가장 좋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이다.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이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게된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우리의 일상이 된다. 필요한 것을 아시고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으로 충분한 삶의 은총이다. 우리의 삶으로 하느님을 알게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성장시키시는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오늘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고 내일도 하느님을 향한 감사이다. 견디고 헤쳐나갈 힘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우리의 오늘이며 우리의 내일이다. 걱정이 아니라 깨달음이며 생각이 아니라 차려주신 오늘을 차려주실 내일을 맛보고 만나는 만남이다. 걱정을 손 잡아주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그날로 충분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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