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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6월 17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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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

 

 

2022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여호야다 사제는 아하즈야 임금의 어머니 아탈야를 죽이고, 바알의 제단을 허물고는 주님의 집에 감독을 세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시며,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6월 17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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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6장 19-23절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양종석 베다 신부 강론

 

 

2022년 6월 17일 (금)
양종석 베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이길재 베드로 신부 강론

 

 

2022년 6월 17일 (금)
이길재 베드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우리 삶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보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하여 땅 위에 쌓은 보물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 쌓은 보물입니다. 땅 위의 보물은 좀과 녹으로 훼손되고 도둑이 훔쳐 가기도 하는 불완전하고 순간적인 것이지만, 하늘의 보물은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이 훔쳐 가지도 못하는 완전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삶 전체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 삶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현세의 것과 하느님의 것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찾으려면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투신’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비유를 전하는 마태오 복음 13장 44절에서도 밭에 숨겨진 하늘 나라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전합니다.

한편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던 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주님을 떠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리 몸 전체를 비추고 이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이기적인 욕심에 빠진 탐욕스러운 눈은 우리 몸을 어둡고 병들게 하며 우리를 고립시킵니다. 반면에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애덕과 나눔으로 가득한 맑은 눈은 우리 몸을 밝고 따뜻하게 하며 주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더욱 충만하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지,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내 눈은 어디를 좇고 있는지 곰곰이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재물이 보물이 아니어야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적이 밖에 있다면 막는 것이 어렵지 않고 내부에 적이 막기 어렵습니다. 적이 밖에 있으면 성안의 사람들이 똘똘 뭉쳐 막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련한 침략가는 적전분열이라는 계책을 씁니다. 안에서 서로 싸우다 스스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이든 안에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실망스러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는 공동체가 실망스러운 것이 더 문제이고, 내가 사는 공동체가 실망스러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망스러운 것을 보고 실망에다 절망까지 하는 내가 더 문제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상이 어두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이 어두운 것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내 안의 어둠이 어떻게 옵니까? 

욕심에서 오고, 근심걱정에서 오고, 많은 경우 재물에서 옵니다. 

재물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재물에 희망을 걸었는데 재물이 금심걱정을 하게 하고, 재물이 욕심을 부리게 하여 죄를 범하게 하고, 재물이 형제간의 사랑도 갈라지게 하고, 재물이 살인도 저지르게 하고, 아무튼, 희망을 걸었던 재물이 불행하게 합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네 안의 빛이 어둠이라면'의 뜻이고, 그 어둠이 더 어둡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더 풀이하면 재물을 보물로 여기기에 마음이 온통 재물 욕심으로 가득하면 재물 때문에 마음은 어둡고 마음이 바로 지옥이 된다는 말씀이기도 하고요.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칭찬이 독이 되는 인간 : 마음의 빛이 어둠인 사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십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빛이 눈으로 나온다시며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마태 6,23)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네 안에 빛이 어둠이면”의 뜻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빛이 어둠이 될까요? 

‘개는 훌륭하다’에서 보호자들을 가스라이팅하는 레트리버에게 강형욱 훈련사도 손을 물린 적이 있습니다. 리에라는 레트리버는 다른 사람들이나 산책하다 작은 강아지를 만나도 도망을 치거나 드러누워 배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겁이 많은 아이인데 가족은 다 뭅니다. 물론 물고 나서 가족 무릎에서 다시 재롱을 떱니다. 가족들은 리에가 본래 착한 개인데 어떤 상처가 있어서 그런 줄 압니다. 하지만 리에는 가족들을 가스라이팅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화분을 닦으려고 하자 순하디순한 리트리버는 으르렁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보호자는 뒤로 물러섭니다. 화분을 언제 닦느냐는 질문에 보호자는 리에게 없을 때 닦는다고 합니다. 리에가 화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워낙 착한 개이니까. 그러나 강 조련사는 “그거는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데, ‘다 이유가 있겠지! 공부가 얼마나 어려우면!’이라고 하며 방치하는 것과 같아요”라고 따끔하게 말해줍니다. 

리에는 가족들을 자기가 살짝 물 때부터 가족들이 자기를 무서워하는 것을 압니다. 사랑도 받고 싶고 지배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물면서 지배하며 애교를 부리고 사랑도 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리에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세속-육신-마귀에서 마귀는 ‘지배욕’입니다. 지배욕이 있는데 소유욕이 없을까요? 리에는 화분을 자기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보호자가 화분을 만지려 할 때 화를 내는 것입니다. 내 것이니까 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따라준 주인에게 다시 애교를 부립니다. 이것만 지켜주면 착한 개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강 훈련사는 이런 개에게 잘 대해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일부러 화를 내게 만들어 강하게 제압합니다. 이 과정에서 손을 물리게 됩니다. 하지만 억지로 눕혀놓고 입마개를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주인이 “앉아!”를 시켜봅니다. 리에는 앉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여기는 보호자에게 앉아서 굳이 칭찬을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높은 사람에게 들어야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앉습니다. 

강 훈련사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훈련하며 절대 순종하기 전까지는 잘해주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런 애정이 독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음의 빛이 어둠이면’이란 ‘탐욕’을 나타냅니다. 세상은 어둠이고 하늘은 빛입니다. 마음의 빛은 내가 마음으로 바라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빛이 어둠일 때는 마음이 하늘의 것이 아닌 ‘생존욕구’, 곧 ‘세속-육신-마귀’를 추구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탐욕-성욕-지배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라고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그리고 먼저 참 빛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3-34)

만약 세속-육신-마귀를 계속 빛으로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말씀과 성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세속-육신-마귀를 추구하는 이들은 아직 짐승의 수준에 머물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잘해줘 봐야 하느님까지 가스라이팅합니다. 자기가 잘해서 받는 줄 알지 보호자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이에게까지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돈주머니를 쥐고 있었던 유다에게까지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시고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발로 밟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런 이에게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신 것일까요? 그가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원하는데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다 주셨으니 그의 멸망에 대해 더는 예수님께서 책임을 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쨌건 우리는 마음의 빛이 어둠인 사람, 곧 세상 것을 추구하고 세상 것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며 성당으로 이끌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례를 받아도 모령성체를 하게 됩니다. 

마음의 빛이 참 빛을 추구하는 이들을 초대합시다. 그들에겐 잘해주어도 됩니다. 그들에게 하는 칭찬은 훈련이 되고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하지만 다시 돈에 대한 욕구나 육욕, 그리고 지배욕이 커져 순종하지 않는다면 결핍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잘해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칭찬해주어야 할까요?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여학생 80명에게 남들이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엿듣게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은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만 합니다. 한 사람은 끊임없이 긍정적인 말만 합니다. 한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하다가 긍정적인 칭찬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긍정적인 말을 하다가 부정적인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 네 명 중 사람들이 가장 호감을 느낀 사람은 누구일까요? 시종일관 칭찬만 하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다가 마지막에 긍정적으로 칭찬해 준 사람입니다. 그러면 가장 비호감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만 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좋은 말을 하다가 마지막에 부정적인 말을 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은 그 사람에 대한 상대의 기대를 나타냅니다. 계속 좋은 말만 하거나 계속 나쁜 말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을 하다가 긍정적인 말을 한 사람에게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줍니다. 

하지만 역시 세속-육신-마귀가 자라게 하는 그런 칭찬은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나를 지배하는 가스라이터로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 빛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것을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결국 비호감이 되거나 자신이 만든 가스라이터로부터 가스라이팅 당하며 살게 됩니다. 

여기 좋은 칭찬의 예가 있습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강박증 환자 잭 니콜슨은 레스토랑 종업원 헬렌 헌트의 사랑을 이 한마디 칭찬으로 얻어냅니다. 

“칭찬 한 가지만 해봐요.”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약을 먹기로 했어요. 약을 먹으면 좋아질 수 있대요.”

“그게 무슨 칭찬이에요?”

“당신은 내게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내 생애 최고의 칭찬이에요.”

돈만 알고 오만하기 짝이 없어서 의사 말도 안 듣던 잭 니콜슨은 헬렌 헌트 때문에 겸손해지기로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탐욕-소유욕-지배욕에서 벗어나게 했다면 그것만큼 큰 칭찬이 없습니다. 또 이런 칭찬은 헬렌 헌트의 마음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도 돈 때문에, 그리고 교만하여서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칭찬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돈을 잘 번다고, 얼굴이 예쁘다고, 머리가 좋다고 하는 칭찬은 결국 나를 가스라이팅하기 위한 계략이거나, 아니면 나를 진짜 세속-육신-마귀에 빠지게 만들어 지옥으로 보내려는 사탄의 계략일 뿐입니다. 합당한 칭찬은 마음의 빛이 어둠인 사람이 참 빛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그의 책 ‘에티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탐욕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탐욕에 절제가 자리 잡을 수가 없습니다. 또 탐욕에는 중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갈망으로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갈증이 생긴다고 바닷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닷물의 높은 염도로 인해서 더 갈증을 느끼고 탈수 현상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탐욕 역시 더 큰 탐욕을 일으키면서 우리를 주님 곁에서 벗어나 더 나쁜 곳으로 이끌게 됩니다. 
 
어떤 청년이 취직되지 않는다면서 “최저임금을 받아도 좋으니 취업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뒤, 자신의 바람대로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경력도 없고 학벌도 좋지 않아서 최저임금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최저임금으로 만족할까요? 부족하다는 생각에 불평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동차나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전에 타던 차보다 못한 것을 사는 것이 아니고, 집은 전보다는 넓혀서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탐욕은 늘 지금의 자리에서 계속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는 사람만이 탐욕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탐욕의 유혹을 이겨내고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만족할 수 있을까요? 사실 세상의 기준을 따르면 절대로 불가능한 말입니다. 대신 주님의 기준에 집중한다면 탐욕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주님 사랑에 집중했었던 성인·성녀는 모두 세상의 것에 자유로웠습니다. 
 
주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은 계속해서 세상의 기준을 따르면서 탐욕을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은 주님 사랑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이 맑다는 것은 단순, 정직, 솔직, 순수 등의 의미입니다. 특히 주님의 뜻만을 향하면서 주님께 눈길을 두고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맑은 눈을 통해서만 주님의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보물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입니까? 아니면 땅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동시에 알게 됩니다. 하늘입니까? 아니면 땅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두면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내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이미 존재한다.

- 오스카 와일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 21)

 

우리의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는 시간이다. 가치 있는 삶으로 초대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첫째로 주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삶의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의 마음이 맑으면 우리 삶의 열매도 따라 맑아진다. 

올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음의 참된 삶이다. 마음이 깨어지면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다. 마음은 물질로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참된 사람의 도리는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의 삶이다. 올바른 마음의 방향이 신앙의 참된 정체성이다.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회개의 시작이다. 우리 마음에 담아야 할 진짜 보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마음이 있는 곳에 서로를 살리는 사랑이 있고 보물이 있는 곳에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보물은 마음이며 마음의 보물은 맑은 사랑이다. 복음은 마음이 향해야 할 사랑의 기쁜소식 마음의 실천이다. 일상의 실천이 참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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