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2/11/21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1. 21.
반응형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 그분은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셨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분 자비는 세세 대대로,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라. 

그분은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셨네.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네. 당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그분의 자비 영원하리라.

 

2022년 11월 21일 (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1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즈카 2,14-17)
    딸 시온아, 즐거워하여라. 내가 이제 가서 머무르리라.

  • 오늘 복음
    (마태 12,46-50)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1월 21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주님,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를 영광스럽게 기념하며 공경하오니 저희가 그분의 전구로 주님께 풍성한 은총을 받게 하소서.

 

 

복음
마태 12장 46-50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덕재 안드레아 신부 강론

 

 

2022년 11월 21일 (월)
김덕재 안드레아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11월 21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에 대한 신심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기념일에 교회는 마태오 복음 12장 46-50절을 봉독합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옵니다. 근동 지방 전통과 성경 전통에서 “형제”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들뿐 아니라 가까운 친족까지 포함합니다. 이어서 복음서의 저자는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라고 서술합니다. 

이를 직역하면 ‘그러고서는 당신의 제자들 위로 당신의 손을 뻗으시며 또 이르셨다.’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공동체를 가리키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제자 공동체가 스승 예수님의 새로운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에서 ‘하느님’이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제자 공동체가 지닌 가정으로서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혈육으로 이루어진 가정 공동체의 중요성만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새로이 구성된 가정 공동체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친족에게 면박을 주시기보다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을 부각하시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이며 그분의 가정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공동체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존재 이유이며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그 뜻을 삶에서 실천하도록 초대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봉헌의 완성, 봉헌의 대물림

 

오늘 성모 자헌 축일은 이름대로 성모님께서 자신을 봉헌하셨음을 기리는 날이지만 속 내용을 뜯어보면 두 가지 뜻이 겹으로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성모의 자헌에는 마리아가 부모 요아킴과 안나에 의해서 봉헌되었지만, 부모의 그 봉헌을 거역하지 않고 스스로도 자신을 봉헌하셨으며 아드님을 봉헌하셨을 뿐 아니라 그 전에 자신도 봉헌하셨다는 뜻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봉헌은 부모의 봉헌입니다. 지금도 불교에서는 동자승이라는 것이 있듯이 마리아의 최초 봉헌은 부모님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마리아의 봉헌이 이것으로 그쳤다면, 다시 말해서 스스로 자신을 봉헌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마리아가 봉헌되신 것이라면 칭송받아야 할 것은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이지 마리아 자신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자헌 축일은 마리아가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꺼이 순종하여 부모의 봉헌을 완성하신 것이며 여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틀림없이 당신을 봉헌하신 부모의 뜻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으셨고, 그래서 하느님의 뜻인 부모의 뜻을 완성하려고 순종하시고 봉헌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봉헌에도 이런 완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스스로 봉헌하길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는 의미 말입니다. 

부모의 뜻이건 하느님의 뜻이건 거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진정한 의미는 기꺼이 순종하고 봉헌하는 데 있겠지요. 

그러나 마리아의 봉헌이 더 완성을 이룬 것은 당신의 봉헌이 아드님의 봉헌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봉헌의 대물림이랄까 그것이 마리아의 자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을 진정으로 봉헌할 때 자식을 주님의 자식으로 봉헌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자식들도 자신을 봉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봉헌의 완성, 봉헌의 대물림을 묵상하는 성모 자헌 축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서로 함께 사는 비결

 

고대 로마는 다신교였습니다. 하나의 신이 아닌 여러 신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러 신 중에 부부 싸움의 수호신이 있습니다. 비리프라카 여신입니다. 
 
부부 싸움을 하면 비리프라카 여신을 모시는 사당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한 번에 한 사람씩 차례로 여신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여신에게 호소하는 동안 다른 한쪽은 잠자코 듣고만 있어야 하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다 보면 상대방의 주장도 일리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되풀이하면서 호소하는 동안 흥분했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결국 여신을 찬양하면서 둘이 사이좋게 사당을 나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군가와 다툴 때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이야기하기에 더 바빴던 것이 아닐까요? 내 말을 통해 상대의 이해를 바라기보다, 상대의 말을 통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말을 듣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 말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 말만을 통해서 어떤 화합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상대의 말을 잘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함께 사는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를 버리고 상대의 입장에 서는 것.’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하였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단순히 봉헌만으로 성모님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는 봉헌을 자기 삶으로 더 거룩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율법학자들은 마귀 들린 자라고 떠들곤 했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돌게 됩니다. 그 소문을 들은 성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당시에는 자기 가문에서 사회적으로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성모님과 친척들이 서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특별한 분이시고, 하느님께 봉헌되신 분이었습니다. 이런 분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끌고 집으로 갔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다가 찾았을 때도 마음에 간직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내 이웃과의 관계는 어떠하십니까? 나를 버리고 상대의 입장에 서서 마음 안에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늘 같은 풍경을 바라보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각자 본 풍경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 마스다 미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봉헌합니다. 봉헌을 멀리서 찾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생활의 봉헌이며 가장 가까운 관계의 봉헌입니다. 자발적인 봉헌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참된 봉헌입니다. 봉헌으로 시작하여 봉헌으로 마무리되는 봉헌의 이 여정입니다. 사랑의 봉헌은 흩어진 형제들을 하나로 모으는 일치의 힘이 됩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까지 하나로 이어주는 봉헌입니다. 봉헌의 마음이 하느님을 향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깨끗한 우리의 첫마음입니다. 인격은 봉헌을 통하여 더욱 깊어지고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모든 여정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봉헌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가장 고귀한 신앙입니다. 

내어드려야 낮아질 수 있고 내어드려야 고요할 수 있습니다. 봉헌이 우리의 삶을 이끌고 봉헌이 우리가 누군지를 다시 알려줍니다.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봉헌은 우리의 정신을 새롭게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놓쳐버린 것은 봉헌의 정신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은 봉헌이며 봉헌은 우리의 참된 실행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봉헌으로 오시고 봉헌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십자가의 봉헌이며 사랑의 봉헌입니다. 가장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께 돌아가는 모든 삶의 시간이 봉헌이며 회개입니다. 만남을 봉헌하고 마음을 봉헌하는 참된 평화입니다. 봉헌은 그래서 평화이며 은총가득한 삶의 기쁨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봉헌의 실행입니다. 오늘도 기쁜 봉헌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맡겨드립니다. 삶의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