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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11/20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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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2022년 11월 20일 (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1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2사무 5,1-3)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 제2독서
    (콜로 1,12-20)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23,35ㄴ-43)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1월 20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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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사랑하시는 성자를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시어 만물을 새롭게 하셨으니 모든 피조물이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섬기며 끝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복음
루카 23장 35ㄴ-43절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기석 사도요한 신부 강론

 

 

2022년 11월 20일 (일)
박기석 사도요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강론

 

 

2022년 11월 20일 (일)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습니까?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에 한 해 동안 걸어온 여정을 돌아보며, 성찰에 필요한 실마리를 성경 말씀에서 찾습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고, 이제 다윗에게 영원한 왕권을 주시며 그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한편 제2독서의 내용은 예수님에 대한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입니다. 성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기에, 성자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해서 창조되었으며,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은 예수님을 메시아 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빈정대는 유다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죄수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는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라며 그분을 모독하지만, 다른 이는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 메시아 임금이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무력과 권력으로 세상을 통치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만물을 화해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웃과 화해하였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주님 앞에 나설 힘을 지니려면.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마지막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심판관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실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일일이 심판하신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미 우리는 양이나 염소로 바뀌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심판하시기 이전에 우리는 심판받았습니다. 마치 오징어잡이 배의 환한 불빛이 이미 나뉘어 있는 오징어와 다른 물고기들에게 심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오징어처럼 빛을 좋아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명이 나오는데, 한 명은 구원을 못 받고 한 명은 받습니다. 어떻게 두 범죄자가 하나는 구원되고 하나는 구원되지 못했을까요? 한 죄수는 예수님께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라고 말합니다. 메시아로 믿어도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구원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메시아의 위에 서서 이래라저래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더라도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구원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다른 죄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1-42)

이 죄수는 구원해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청하는 것과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구원해 달라고 청한 죄수는 그에 합당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기억해 달라고 청한 죄수는 그에 합당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서는 두 방법이 있습니다. 상처를 주거나 고마운 일을 하거나. 제가 신학생 때 유학 갈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제 가슴을 꼬집어 상처를 낸 자매가 있었습니다. 엄청 아프게 꼬집어서 손톱자국과 벌건 멍까지 들었건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일은 기억나는데 그렇게 한 자매는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다음에 만난 적이 거의 없어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공항까지 따라 나온 자매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 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는 사람까지 거의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제가 악한 사람이었으면 아픈 것을 더 기억하려 했을 것입니다. 반면 굳이 아프게 한 사람을 기억하며 속 썩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 금방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저에게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상처를 주며 기억해 달라는 방법을 취한 사람보다는 고마운 일을 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마지막 때 예수님 앞에 설 힘이 없을 것입니다. 구약의 야곱을 생각해보십시오.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어찌 쉽게 형 앞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쫓기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 나설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 방법은 오늘 구원받은 죄인처럼 주님께 고마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잊는 일이 있는데, 오늘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죄수는 예수님께 고마운 일을 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한 것입니다. 그분을 모독하는 죄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루카 23,40-41)

그분이 우리를 변호하시도록 우리도 그분을 세상에서 변호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 그분 앞에 설 힘을 얻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할 때 저를 불러주신다는 증거를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님이 진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그분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냥 무릎을 꿇고 바닥만 내려다보았습니다. 가끔 그분의 발가락이나 보며 그분이 가셨는지 안 가셨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그분 앞에 설 아무 일도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당에서 많은 봉사를 하였지만, 그런 것으로는 성모님 앞에 설 힘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분 앞에 서려면 죽기까지 당신 아드님을 변호한 고마운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앞에 설 힘을 얻으려면, 내가 고마워할 무슨 일이라도 하여라!”

유튜브 채널 ‘From SOLA’에서 감동적인 영상을 보았습니다. 암에 걸려 머리를 밀고 돌아온 주인을 본 반려견의 반응입니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아서 반려견은 주인을 안아줍니다. 물론 다른 반려견은 3년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길러준 주인을 못 알아보고 짖기도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분이 고마워할 만한 무엇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께서 해 주신 엄청난 사랑 앞에서 견딜 수 있습니다. 그분이 왕으로 우리 앞에 오실 때는 우리는 더는 그분께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안 됩니다. 반면 지옥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앞에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느 집에 사는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일까요?

 

책상 위가 깨끗하고 정리 정돈이 잘된 집과 책상 위에 책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고 정리 정돈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집이 있습니다. 어느 집에 사는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일까요? 대부분 정리 정돈이 잘 된 집에 사는 사람이 부지런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주위에 이렇게 정리 정돈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 동창 신부입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방이 얼마나 깨끗하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에 반해서 저는 정리 정돈을 잘하지 못합니다. 책상 위에는 많은 책이 늘 어지럽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신부에게 부지런해서 정리를 잘한다고 칭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게을러서 방이 늘 엉망이라고 말했지요. 이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실 내가 더 게을러. 사람들은 내가 부지런해서 청소를 자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마 네가 더 청소를 많이 할걸? 나는 게을러서 청소를 잘 안 해. 청소하기 싫어서 어지럽히지 않고, 늘 그 자리에 두고 있을 뿐이야. 게을러서 청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지.” 
 
이 신부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상당히 부지런한 신부가 있는데 그 신부의 방은 너무나 정신없거든요. 부지런히 살다 보니 늘 방이 어수선해졌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실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실제와 같다고 단정 짓는 우리는 마음이 아닐까요? 
 
오늘은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인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약한 모습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해서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시는 순간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께 빈정거리며 조롱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큰 죄를 짓고서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라고 모독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점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의 우측에 매달린 죄수는 그를 꾸짖으면서 동시에 자비를 청합니다. 자기 죄에 대한 뉘우침을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라고 하면서 표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면서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예수님을 하늘나라의 왕으로 믿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그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요? 진정한 뉘우침 후에 믿음은 더 굳건해집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절망은 극적인 변화를 위한 원료다. 자기가 믿었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자만이 탈출을 꿈꿀 수 있다.

- 윌리엄 버로우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단풍잎이 아쉽게 떨어지듯 빠르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많은 것을 실천하지 못한 아픈 한 해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헤아려주시는 그리스도왕께 이 아픔을 내어드립니다. 한 해의 마무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께 봉헌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실천도 주님의 도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현실은 낙원을 꿈꾸고 낙원은 현실을 위로합니다. 끝까지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의 임금이십니다.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사랑으로 우리의 존귀함을 되찾아 주십니다. 혼돈 속에서 십자가를 풍랑 속에서 첫마음을 되찾아 주십니다. 부끄럽고 부족해도 또 한 해를 살았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부끄러움과 부족함까지 한 몸이 되게합니다. 버릴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의 뚜렷한 구분이 주님 앞에서는 마음의 성장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 누리의 임금이인 예수님을 닮아 더 깊어지고 더 따뜻하여지면 좋겠습니다. 

마무리가 좋아야 모든 것이 좋은 것입니다. 마무리는 감사(感謝)입니다. 먼저 사람에게 감사드립니다. 사람들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왕이입니다. 다시 우리들은 사람들 속에서 세상 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반성합니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세상은 지위나 권력이 아닌 사랑의 가치를 십자가처럼 들어올리는 삶입니다. 삶의 의미를 알려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곳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오늘을 만나고 낙원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는 용서의 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왕께는 십자가가 있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왕이 계십니다. 그리스도왕께 욕심이 아닌 용서를 청합니다. 기뻤고 슬펐고 아쉽고 부족했던 이 모든 것이 십자가와 함께 성장하길 기도드립니다. 오늘 오늘을 놓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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