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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11/16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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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거룩한 성소에서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웅대한 창공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위대한 일 이루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크시오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뿔 나팔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비파 타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손북 치고 춤추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거문고 뜯고 피리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라 소리 낭랑하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라 소리 우렁차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2022년 11월 16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1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묵시 4,1-11)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 오늘 복음
    (루카 19,11ㄴ-28)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1월 16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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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복음
루카 19장 11ㄴ-28절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한종운 시몬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6일 (수)
한종운 시몬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6일 (수)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섣부른 기대감과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하여 ‘미나의 비유’를 설명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올 때, 예수님께서 메시아 임금으로서 행하실 ‘심판’을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하느님의 나라가 급박하게 오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저자는 섣부른 기대감과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곧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오랫동안 수행해야 할 사명이 제자들에게 부여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 비유에서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길을 떠나는 주인은 종 열 사람에게 한 미나씩 나누어 줍니다. 유다 화폐 단위였던 미나는 백 데나리온이며, 한 미나는 노동자가 백 일 동안 모은 품삯입니다. 마침내 돌아온 임금은 종들을 불러 미나를 어떻게 관리하였는지 묻습니다. 

한 미나를 받았던 첫째 종은 열 배로, 둘째 종은 다섯 배로 늘렸습니다. 주인은 작은 일에 충실하였던 종들에게 각각 고을을 맡깁니다. 그러나 다른 종은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임금은 게으르고 악의에 찬 종의 견해대로 그에게 혹독한 판결을 내립니다. 물론 이 비유에서 마지막 종에 대한 임금의 처우가 부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한 불충한 유다인들에게 내려질 엄중한 심판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냉혹한 심판자’로만 여기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은 내게 어떤 분? 나의 사랑은 어떤 사랑?

 

오늘 루카 복음은 미나의 비유로서 마태오 복음의 탈란트의 비유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비유입니다. 

탈란트의 비유에서는 탈란트를 더 받기도 덜 받기도 하는 데 비해 미나의 비유에서는 똑같이 한 미나를 열 사람이 받습니다. 

이 비유에서 미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사랑을 받았다고 이해하고, 저는 오늘 비유를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 비유를 대입시키니 인생 결산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내가 준 사랑 한 미나를 일생 어떻게 관리했냐고 주님께서 비유의 주인처럼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성찰해 보니 아버지 없어서 가난하고 고생한 것 때문에 하느님을 원망한 사춘기 때를 빼고는 한 번도 비유의 마지막 사람처럼 하느님을 냉혹한 분으로 생각한 적이 없고, 반대로 사랑의 하느님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그렇게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입버릇처럼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겠다며 사랑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봉사자들과 하루 식당을 여는 기도를 바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도 당신 사랑을 저희에게 가득히 부어주시어, 저희가 당신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고, 그 사랑을 이 식당을 통해 이웃과 나눔으로써 당신 복음이 이 지역에 널리 전파되게 하소서.” 

그런데 이렇게 지향을 두고 입으로는 그렇게 사랑하려고 하지만 실제를 보면 저의 인간적인 사랑으로 사랑할 때가 많음을 보고, 반성이랄까 후회를 하곤 했는데 오늘은 이런 반성이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너도 비유의 마지막 종과 같이 한 미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어! 

저는 비유의 그 종처럼 주님을 냉혹한 분으로 알고 있지 않고,사랑의 주님으로 알고 있고, 그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사랑으로 사랑치 않고, 내 사랑으로 사랑한 것이 바로 받은 한 미나를 수건에 싸 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왜 주님의 사랑을 받고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고, 그 사랑을 고이 수건에 싸 두는가? 

그 사랑을 뭣에 써먹으려고 그렇게 고이 간직하고 있는가? 

혹시 나만 그 사랑을 독점하려는 것은 아닌가? 

마치 형제와 나누라고 부모가 준 돈을 형제들과 나누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쓰려고 지갑에 또는 금고에 숨기는 것과 같지 않은가? 

제게 그럴 마음은 결단코 없지만 주님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음은 결과적으로 주님 사랑을 수건에 싸 둔 것이 되겠지요. 

저는 오늘 이것을 묵상하고 반성하는데,여러분은 어떻습니까?.하느님은 여러분에게 냉혹한 분입니까? 사랑이십니까? 사랑의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시는지요?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 안에서 자라나는 하느님 나라 형성 단계

 

오늘 복음은 소위 ‘미나의 비유’입니다. 한 미나는 약 100데나리온의 가치입니다. 그러니까 한 1,000만 원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이 비유는 화폐의 단위만 다른 탈렌트의 비유와 일치합니다. 그런데 한 탈렌트는 6,000데나리온으로서 약 6억 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탈렌트의 비유는 다섯, 둘, 한 탈렌트를 주는 것과는 달리 미나의 비유에서는 모든 종에게 동일하게 한 미나씩 맡깁니다. 이는 동일한 구원의 씨와 같습니다. 구원은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그것을 키우는 것에 따라 각자 다른 심판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한 미나는 그래서 우리 구원을 위해 뿌려주시는 말씀의 씨앗, 성체의 씨앗이라고 보면 됩니다. 

오늘 복음에는 크게 세 부류의 종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주인이 임금이 되려고 떠나는 것도 탈렌트의 비유와 다릅니다. 첫째 부류는 주인이 임금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백성들입니다. 둘째 부류는 한 미나를 땅에 묻어놓은 종이고, 마지막 부류는 그것으로 주인을 영광스럽게 한 부류입니다. 오직 마지막 세 번째 종들만이 구원에 이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우리 임금이 되어주시는 것에 우리가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이 나를 지배하게 됨으로써 나는 자아의 압제, 어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멍에를 메지 않는다면 나는 못된 선장의 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그분이 임금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임금이 되어 돌아온 주인은 그들을 처형하라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그분을 임금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이것이 선악과를 봉헌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야곱은 불콩죽을 에사우에게 봉헌하는 것으로, 또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이사악에게 봉헌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바치고 심지어 아들을 바치는 것으로 주님이 주님 되심을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그분을 임금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내게서 자랄 수 없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멈추면 안 됩니다. 한 미나를 땅에 묻어둔 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처럼 주인을 냉혹하고 두려운 분으로 여겼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씨앗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키우지 않았습니다. 주인만 좋은 일 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키우기 위해서는 항상 ‘감사’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 감사하지 못하면 어떤 구원의 씨앗도 자라지 않습니다. 

많이 말씀드린 이야기지만, 저는 신학교에 들어와 성체를 영하며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말로 간신히 못된 종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습니다. 불만이 가득했을 때는 나의 불만을 채우는 데 급급했지만, 감사가 나오니 그분의 뜻을 따라주고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구약의 야곱은 어떻게 했을까요? 자기 불콩죽을 드시고 가죽옷을 내어주어 하느님 나라 상속받게 된 야곱은 이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에사우가 살았듯이 삽니다. 에사우가 맺어야 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20년 동안 갖은 고생하며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에사우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 그분이 맺으셨을 법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분 앞에 나설 수 없게 됩니다. 

2020년 3월 카자흐스탄 국적 20대 이주노동자가 알리 압바르 씨가 23일, 밤늦게 귀가하다가 자신이 사는 강원도 양양 원룸 건물 2층에서 불이 난 걸 목격했습니다. 곧바로 서툰 한국말로 소리치며 이웃과 함께 입주자 10여 명이 대피하도록 도왔습니다. 이어 불이 난 2층 방에서 50대 여성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안 알리 씨는 망설임 없이 건물 밖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끝내 숨졌고 알리 씨도 등과 목 등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다쳐서 일을 못 하다 보니 치료비는 물론 고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매달 보내던 생활비도 막막해졌습니다. 딱한 사정을 접한 한 이웃이 앞장서 모금한 덕에 지금까지 병원비 700여만 원은 간신히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병원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난 후 당장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현장이 수습되면 자신이 불법체류자임이 드러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화마 속에서 손길을 내밀고 있는 생명이 훨씬 더 소중했습니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면서 알리 씨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국민청원이 잇따라 올라왔고 양양군도 보건복지부에 의상자 청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구조된 이들과 소식을 접한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체류를 인정해달라는 청원을 했고, 결국 의인상 수상과 함께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주권을 받을 때 불법체류자로 살던 어려웠던 삶의 기억에 눈물을 흘렸고 이제는 가족과 한국에서 함께 사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러한 순서로 이어집니다. 그분이 먼저 당신을 주님으로 인정해 달라고 우리의 것을 조금 요구하십니다. 내가 그것을 드리면 그분은 당신을 내어주십니다. 그러면 그분 안에 거하게 됩니다. 야곱에 베텔에 머물게 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은 하느님 나라 백성을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취급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 미나가 하나의 영혼이라 하면 다른 영혼들도 한 미나로 보입니다. 그래서 다른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구할 줄 알아야 비로소 영주권을 얻게 됩니다. 만약 야곱이 열매 없이 에사우에게 돌아갔다면 에사우가 받아들여 주었을까요? 그 앞에 나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내가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 합당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간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떤 뜻을 따르면서 살고 있습니까?

 

젊은 부부는 자기의 아기가 태어날 때, ‘기적’ 같다고 말합니다. 자기를 닮은 아기, 그래서인지 온갖 정성을 아기에게 쏟아부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팔다리를 많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운동 신경이 너무 좋다고 말하고, 엄마 아빠를 빠르게 말했다면서 ‘천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렁찬 울음소리에 성량이 좋아서 노래 잘 부를 것으로 예측합니다. 마구 휘저은 낙서를 보면서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이렇게 자주 서로에게 말합니다. 
 
“우리 아기 운동선수 시킬까? 아니야. 머리가 좋으니 교수를 시키자. 노래도 잘할 것 같은데? BTS 같은 아이돌 가수는 어때?” 
 
우리 아이는 커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으며,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을 때, 부모의 생각을 충족시켜 줄까요? 아마 적당한 선에서 머무르는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 뜻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 뜻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주님 뜻대로 살지 않는 우리라는 것입니다. 열정적인 노력보다는 편안한 삶을 선택하려고 하기에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 뜻대로는 절대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주님 뜻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뜻을 말입니다. 
 
미나의 비유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면서 종 열 사람에게 한 미나씩을 나눠주지요. 미나는 1탈렌트의 1/60에 해당합니다. 1탈렌트가 6,000일 치의 노동자 임금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1미나는 100일 치의 임금임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이지만, 주인이 냉혹하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서 수건에 싸서 보관만 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이 한 미나 마저 빼앗기고, 가장 많은 미나를 벌은 사람은 그 빼앗긴 미나를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열 미나를 벌은 사람은 재능을 많이 발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미나를 벌은 사람은 첫 번째 사람보다 조금 덜 재능을 발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건에 싸서 보관한 사람은 재능을 전혀 발휘하지 않고 딴전만 부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능을 발휘하지 않았으면서도 자기 잘못 탓보다는 주인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이런 마음이 주님 뜻보다는 자기 뜻을 내세우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절대로 제대로 살기 힘들다는 것을 주님께서도 이야기하시지요. 
 
여러분은 어떤 뜻을 따르면서 열심히 살고 계십니까?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간이란 미소와 눈물 사이를 왕래하는 시계추와 같은 것이다.

- 바이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사랑과 십자가는 한걸음 한걸음씩 내딛는 우리들의 충실함으로 자라납니다. 충실함은 올바른 실천입니다. 올바른 실천은 올바른 믿음을 되찾게 합니다. 올바른 믿음은 착하고 성실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 우리가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감사는 가장 아름다운 실천의 영역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주어진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바람직하며 적극적인 관계는 우리의 역할에 충실한 반성의 관계입니다. 십자가의 소임에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누구를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정직한 여정입니다. 하느님과 너무 멀어져 있는 우리의 삶을 반성합니다. 본래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는 인격성숙의 관계입니다. 자기자신과의 편안한 관계는 하느님과의 건강한 관계로 이어집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다운 우리들 삶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그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는 삶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입니다. 자유로운 삶은 현실을 바탕으로 구체화시켜 나가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작고 보잘것 없는 일상이란 없습니다. 

일상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한 여정입니다. 삶의 시작부텨 삶의 마침까지 이어지는 일상입니다. 일상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복음의 삶입니다. 복음의 삶은 우리의 일상을 기쁨과 감사 기도로 새롭게 닦아나가는 오늘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기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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