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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11/14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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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리라.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2022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1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묵시 1,1-4.5ㄴ; 2,1-5ㄱ)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여라.

  • 오늘 복음
    (루카 18,35-43)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1월 14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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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복음
루카 18장 35-43절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리백진 파비아노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4일 (월)
리백진 파비아노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4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오늘부터 두 주간에 걸쳐 제1독서로 요한 묵시록을 읽습니다. 유사 종교에서 그릇된 해석으로 혼란을 일으키고는 하는 요한 묵시록은 과연 어떤 책일까요? 요한 묵시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책이 어떤 ‘문학 유형’인지 파악한 다음 그에 맞추어 읽어야 합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뉴스, 드라마,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있습니다. 뉴스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고, 드라마는 허구의 내용으로 시청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끌어내며, 코미디는 과장된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합니다. 각각의 프로그램을 제대로 시청하려면, 우리는 각각의 장르마다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묵시 문학’이라는 특별한 문학 유형으로 집필된 책입니다. 묵시 문학은 악의 세력으로 표상되는 신앙의 박해, 세상 권력, 하느님과 반대되는 가치가 현실에서 득세함으로써 독자가 절망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전제합니다. 

이러한 구체적 상황에도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느님께서 ‘마지막 때’ 곧 종말에 악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승리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 결과, 묵시 문학은 근본적으로 위로의 메시지이며, 독자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꿋꿋이 견뎌 내며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한편 묵시 문학은 환시, 상징적 숫자와 짐승, 우주적 재앙 같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보이는 상징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묵시 문학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그러나 묵시 문학을 마치 미래를 점치거나 길흉화복을 알려 주는 책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유사 종교에서 그러하듯 요한 묵시록을 잘못 이해한다면, 신자들은 구원의 길이 아닌 혼돈과 파멸의 길로 이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칭찬과 나무람과 권고 

 

오늘부터 한 주간은 묵시록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오늘은 에페소 교회에 전하는 말씀인데 칭찬과 나무람과 권고가 있습니다. 칭찬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칭찬의 내용은 악한 자들과 거짓 사도들을 잘 밝혀내어 용납하지 않고 싸운 점과 주님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음에도 인내심이 있어서 지치지 않은 점입니다. 

나무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수고 참 많이 했고 인내심도 대단하지만,,처음의 사랑을 저버린 것은 치명적인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모든 수고와 잘한 것을 다 덮어버리는 잘못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아무리 악과 싸우는 데 지치지 않았어도 처음의 사랑을 저버린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잘못이라는 나무람입니다. 

이것은 즉시 저의 잘못을 떠오르게 합니다.,전에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다시 말씀드리면 제가 환갑이 되던 해는 서품 30주년이기도 하고, 서원 35주년이고, 입회 45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나 돌아보게 되었는데 오늘 에페소 교회처럼 수고 많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잘 산 것은 아니라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잘 산 것이 아닌 삶은 열심히 저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노 저은 것과 같은 거지요. 

그랬습니다. 저는 엄청 많은 일을 했습니다.,그 가운데 수고도 참 많았으며 인내심을 가지고 그것을 견뎌냈습니다. 

그럼에도 잘 살았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은, 하느님 사랑으로 그 많은 것을 하지 않고 인간적인 열성과 힘으로 했으며, 사랑이 없지 않았지만, 그 사랑이 매우 인간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에 잘못되었고,,게다가 저는 매우 교만하고 독선적이었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많이 상처 줬습니다. 

이런 저에게 오늘 묵시록의 마지막 권고 말씀은 딱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어디에서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그것을 찾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저는 프란치스코의 초기 삶을 따라 살겠다는 마음으로 가리봉으로 가 막노동을 하며 우선 제게 묻은 찌든 때를 씻어내려 했습니다. 

현재 저는 찌든 때를 씻어냈는지,,다시 또 다른 때가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다시 또 성찰하고, 다시 또 시작해야겠지요?! 

아무튼, 저나 여러분이나 에페소 교회에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하시는 주님의 칭찬과 나무람과 권고를 귀담아듣고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음이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

 

조금 전에 들은 것도 금방 잊어버린다면서 치매 초기가 아닐까 걱정하는 분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꼭 나이가 들어서 자주 깜빡깜빡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우리 기억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 마크 빅터 한센에 의하면, 들은 것의 64%는 하루 안에 사라지고, 98%는 일주일 안에 없어진다고 합니다. 즉,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만, 기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의사 맥스웰 몰츠는 같은 생각을 열일곱 번 이상 반복하면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기억의 한계.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잘못된 점은 잊어버려야 할 것을 계속 생각하면서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 자체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에 대한 미움, 부정적인 생각들…. 분명히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열일곱 번 이상 반복해서 생각하기에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한 번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끝인 것처럼 생각하고,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해서 잊어버립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감사의 마음을 전혀 갖지 않아서 잊음의 관계만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 결과는 주님과의 관계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예리코의 소경 이야기를 복음은 전해줍니다. 이 소경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까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지요. 이제 그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꾸짖습니다. 예수님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또 죄인인 주제에 왜 큰소리를 지르냐고 꾸짖었겠지요. 이런 장애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에 자기 구원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계속된 그의 외침을 떠올려 봅니다. 이 외침의 반복을 통해, 그는 주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믿음의 외침으로 어두움을 걷어내고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계속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모든 것은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쓰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간절히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게 되는 오늘의 순간순간들입니다. 붙어있음도 떨어져내림도 나뭇잎의 구원임을 다시 보게 됩니다. 치유의 시작은 다시 보게되는 믿음의 시작입니다. 

먼저 간절히 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시간입니다. 다시 볼 수 있게 하시는 주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간절함의 관계입니다. 

간절함은 드디어 주님을 만나게 합니다. 주님을 통해 사람과 세상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새롭게 다르게 볼 수 있는 믿음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 즉시 새로워지는 우리들 마음입니다. 건강한 믿음은 모두를 기쁘게 만듭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없었던 우리들 마음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대로 보아야 제대로 감사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 믿음이고 믿음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구원은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매순간이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은총의 순간들입니다. 

우리의 울부짖음을 우리의 눈물을 믿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예수님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건강한 믿음의 삶입니다. 감정의 구걸을 멈추고 우리자신을 하느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창조는 치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치유가 필요한 우리들 삶입니다. 

"다시 보아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다시 보게되는 새로운 삶입니다. 우리자신이 새로워지는 것이 치유입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을 다시 보게되는 믿음과 구원의 오늘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다시 하느님뿐임을 깨닫고 따르는 새로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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