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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0월 6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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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0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2022년 10월 6일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갈라 3,1-5)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 오늘 복음
    (루카 11,5-13)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0월 6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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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복음
루카 11장 5-13절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조인혁 타대오 신부 강론

 

 

2022년 10월 6일 (목)
조인혁 타대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강론

 

 

2022년 10월 6일 (목)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 청하였으나 받지 못한 경험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 탓을 돌리다가 ‘그럼 나는 주님께 전적인 신뢰를 드리며 청하였던가?’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오늘 복음은 청하는 자와 청을 들어주는 자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한밤중에 빵 세 개가 필요하였던 사람은 아무나 무턱대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꾸어 줄 만한 친분이 있는 벗에게 찾아갑니다. 바라는 것을 얻어 내고자 영리한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한밤중에 자고 있던 그 벗은 귀찮기도 하고 이미 잠든 식구들을 깨우기가 곤란하다며 거절하지만, 친구의 청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계속 졸라 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친구 사이였고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줄곧 졸라 대다’로 번역된 그리스 말 ‘아나이데이아’는 ‘뻔뻔스러움’ 또는 ‘부끄러운 줄 모름’을 뜻합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친구끼리라면 조금 염치없이 뻔뻔하게 굴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서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누구에게 청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신뢰 관계는 친구 사이보다 어쩌면 부모 자식 사이에 더 끈끈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벗이 부탁하는 청도 거절하기 힘든데, 자녀들이 청하는 것을 아버지가 거절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자비를 신뢰합니다. 세상 어떤 아버지보다도 선하신 분,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사소한 청 하나도 허투루 흘려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 여정에 꼭 필요한 선물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우리의 영적 여정에 필요한 선물은 결국 성령의 은사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그 좋은 것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 안에 ‘이것’이 없으면 ‘성령’도 없는 것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2)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에바는 자유로운 여행가입니다. 그러다 프랭클린과 아이를 갖게 됩니다. 아직 아이를 원치 않았던 에바는 태어날 아이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물론 에바는 케빈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케빈은 엄마의 감정을 봅니다. 케빈은 엄마의 마음을 계속 아프게 합니다. 엄마는 결국 자신 안에 있던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맙니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

엄마의 감정을 먹지 못했던 케빈은 성장하면서 계속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되어갑니다. 어느 날 가정에 너무도 소홀한 프랭클린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에바와 이혼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케빈은 엄마를 놓아줄 마음이 없습니다. 케빈은 자신의 아버지 프랭클린과 여동생 실리아를 활로 쏴 죽인 후 학교 체육관의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활로 학교 친구들을 대량 살해하고 체포됩니다. 

재판 동안 에바는 모든 재산을 뺏기고 폐인처럼 생활합니다. 과거 사건을 아는 남자에게 협박당하기도 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손찌검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2년이 지나 18세가 가까워져 소년교도소에서 성인 교도소로 이송될 케빈을 만납니다. 에바는 케빈에게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묻습니다.

“왜 그랬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모르겠어.”

에바는 원하지 않게 어머니가 되었지만, 케빈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주지 못했습니다. 

“감정!”

사랑은 감정입니다. 격리 원숭이가 젖병을 단 차가운 철사 원숭이보다는 젖병이 없어도 수건이 감긴 원숭이 모형을 어미로 여긴 것과 같습니다. 젖을 주는 일은 희생입니다. 하지만 새끼는 따듯한 감정을 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친구가 빵 세 개만 꾸어달라고 밤에 찾아와 다른 친구를 괴롭힙니다. 그 빵 세 덩이는 세속-육신-마귀가 죽는 것을 통해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좋은 감정은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질 때, 육체에 대한 욕망이 사라질 때, 교만이 꺾일 때 생겨납니다. 에바는 아이에게 무언가는 주고 싶은데 세속-육신-마귀를 꺾을 무언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무언가를 우리는 “성령”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는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와 이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청해야 하는 것은 “사랑, 기쁨, 평화”(갈라 5,22)의 열매를 맺는 성령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상대에게 희생해도 상대는 내가 사랑한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내가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할 때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원인인 삼구를 없애시고 좋은 감정이 생겨나게 합니다. 그러면 비로소 친구에게 줄 빵 세 덩이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가 아버지에게 한 미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임금도 싫고 권력도 싫소.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자녀들은 부모의 따듯하고 다정한 감정을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차갑게 젖병만 물려주며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감정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그 대가는 부모와 함께 치러야 합니다.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를 만나고 친구를 만날 때 내가 건네줄 따듯한 빵 세 개가 준비되었는지 살펴봅시다. 다정할 수 없다면 안 만나는 편이 좋습니다. 사랑은 감정입니다. 그 감정은 성령에 의해 생깁니다. 성령은 우리가 기도할 때 오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람 만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일이 잘되지 않을 때 사용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커다란 고통과 시련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극장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떠야 어둠에 조금씩 적응할 수 있습니다. 눈의 조리개가 더 열리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꽤 많은 부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눈앞이 캄캄해지는 고통과 시련을 마주하면서 잠시 눈을 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때가 바로 기도하는 시간이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눈을 뜬다면 어떨까요? 그때 비로소 고통과 시련이 그렇게 크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쁘면 ‘기도할 시간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유가 되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삶과 절대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도끼질을 잘하기 위해 미리 도끼날을 가는 것처럼, 신앙은 우리의 마음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줘서 삶을 잘 살도록 해 줄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느님 나라를 여셨고 모든 사람을 교화시켜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고 하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당연히 악인과 선인을 가리는 심판이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 나라 백성이 될 자격을 주시지요. 더군다나 아들에게 빵 대신 돌덩이를 줄 아버지 어머니가 없고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수 없는 법이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빵과 돌, 생선과 뱀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대조하는 유다의 고유 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저자라 할 수 있는 루카는 전혀 비슷하지 않은 달걀과 전갈을 비교합니다. 아마도 루카가 의사였기 때문에, 몸에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대조한 것일 것입니다. 
 
악에 기우는 사람들이어도 부모로서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압니다. 하물며 아버지 중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나쁘게 내버려 두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께 청원하도록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이 부탁을 들으면서 늘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마음 속 생각은 현실로 나타난다. 이 세상은 당신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 제임스 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청하여라. 너희세게 주실 것이다.

 

하느님 사랑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거짓의 나가 사라지면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의 나를 만납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으로 가득한 기쁨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기도입니다. 온전히 우리 생활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을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로 삶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올바른 마음의 행위가 참된 기도입니다. 조르고 청하는 기도에서 시작하지만 기도는 성장하며 받아들이고 베풀 줄 아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나갑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언제나 기도에 화답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을 만나게 합니다. 가슴과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임을 다시 배웁니다. 우리를 있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면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고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는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 하느님의 가장 좋으신 뜻을 받아들이는 평화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가장 좋은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기도는 가장 좋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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