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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8월 16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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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

 

 

2022년 8월 16일 (화)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티로의 군주가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죽음을 맞이 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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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19장 23-30절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박재환 가브리엘 신부 강론

 

 

2022년 8월 16일 (화)
박재환 가브리엘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강론

 

 

2022년 8월 16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우리가 꼭 붙들고서 삶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것.

 

많은 이가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바늘구멍”이 아니라 ‘바늘 문’으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바늘 문의 원어인 ‘라피스’는 낙타가 등을 구부리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짜기나 작은 출입문을 뜻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낙타”(카멜론)가 아니라 ‘밧줄’(카밀론)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낙타가 바늘구멍이 아니라 작은 문을 빠져나가는 것이 되고, 낙타가 아닌 밧줄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하여 부자의 하늘 나라 입성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의 원문을 변형시켜 해석한다고 하여 듣는 이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이 구절이 ‘불가능성’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부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 심지어 가난한 사람도 스스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지상의 생명을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았듯이, 영원한 생명도 선물로 받는 것이지 내 손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구약 성경을 보면, 부자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욥 이야기의 배경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자는 하늘 나라에 가지 못할까요? 그의 생각이 하느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많이 가짐으로써 만족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에 하느님께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마음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룬 것에 더하여 그분께서 좀 더 도와주시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위안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부가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으며 재물을 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가 꼭 붙들고서 삶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하늘 나라는 부를 믿고 의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마음과 태도를 요구합니다. 많은 좋은 것들을 붙들고 누리며 살다가 유일하게 좋은 것,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불행을 자초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는 부자인가?

 

오늘 주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부자는 큰일이 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부자일까 아닐까 걱정스럽게 생각게 됩니다. 여러분은 부자입니까, 아니면 가난합니까? 

그러나 내가 부자인지 아닌지 생각하기 전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부자는 어떤 것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10억 이상부터 부자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도 알지요. 사회적 분류처럼 상위 5%면 부자입니까? 그런 것도 아니지요. 

여기서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부자이기에 그 기준이 액수가 얼마 이상이냐, 상위 몇%이냐가 아니고, 우선은 하느님 나라가 마음에 있는지 없는지가 기준일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돈만 마음에 있지 하느님 나라가 없으면 부자입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볼 때 나는 부자가 아니라는 사람이 부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나는 너무 부자라고 생각해야 가난해지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많은 부를 욕심 내기에 자기가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하느님 나라보다 부가 내 안에서 더 크면 부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엄마와 일곱 살 아들의 대화

 

일곱 살인 아들과 그 엄마의 대화 내용입니다. 
 
“엄마! 내가 지금보다 스무 살 더 많아지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스물일곱 살이면 뭐든 할 수 있지.” 
 
“그럼, 서른일곱 살이면요?” 
 
“서른일곱 살이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걸?” 
 
“그러면 마흔일곱 살은 요?” 
 
이 질문에 엄마는 망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자기 나이가 마흔일곱 살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마흔일곱을 사는 자신은 스스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두었고, 오랜 경력 단절로 다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에 충실한 것도 사회적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면서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아들에게 뭐든 다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질문을 통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마흔일곱 살 어른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 말입니다. 
 
일곱 살 난 어린이가 마흔일곱의 어른을 변화시켰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를 변화시킨 것은 너무 많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닫혀있는 마음, 나만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 변화를 거부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물론 바늘구멍이 낙타가 빠져나갈 정도로 크다면야 가능하겠지만, 기존 우리가 사용하는 바늘구멍에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부자는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면, 굳이 부나 재물 자체를 만드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부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재물을 잘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마련한 필수 요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을 따르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서 주님을 제일 첫 번째 자리에 모실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행복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로부터 옵니다.

- 에디 제이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마태 19,30)

 

빛나는 햇살이 아침을 밝힌다. 장마와 햇살 사이로 지나가는 8월의 날씨다. 

꼴찌도 첫째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모두 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나그네들이다. 욕망은 바늘 구멍을 빠져나갈 수 없지만 하느님과 하나되는 깨어있는 모든 관계는 언제나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 

복음의 기쁨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 세상에서 이미 가장 귀한 하늘 나라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참된 행복을 맛보는 것이다. 욕망의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하느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만드시고 우리는 욕망의 바늘 구멍을 만들어 어리석고 비좁은 다툼을 어지럽게 벌인다.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할 우리들 삶이다. 육신을 떠나기 전 나누고 베푸는 사랑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다. 굶주린 이들에게 밥을 목마른 이들에겐 마실 것을 헐벗은 이들에겐 옷을 나누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삶이다. 

참된 실천은 바늘 구멍도 사라지게 만든다. 무엇을 위한 바늘구멍이며 누구를 위한 첫째인가! 낙타도 바늘구멍도 첫째의 집착도 버려야 할 모든 것이다. 버릴 때 만나게 되는 하늘 나라이며 나눌 때 보게되는 형제자매의 영원한 생명이다. 

생명은 구원을 필요로 하며 구원은 삶 전체를 이끌고 간다. 사람이 아닌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여쭈어야 할 삶의 모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끌고 가시는 하느님께 오늘의 시간을 기쁘게 봉헌하며 기쁘게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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