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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4/12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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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멀리 떠나 계시지 마소서. 저를 도우소서. 저는 인간도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하느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모든 이가 뽑힌 겨레, 임금의 사제단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을 바라고 이루어 영원한 생명으로 부름받은 백성이 같은 마음으로 믿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4월 12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4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4월 12일 사순 제5주간 토요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에제 37,21ㄴ-28
오늘 제1독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요한 11,45-56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4월 12일
김동일 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8:0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하느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서 라자로를 되살리신 것을 보고 많은 유다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더러는 믿기는커녕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그 일을 알립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몸소 본 이들의 증언을 듣고도 의회에 모인 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정당성을 논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의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라고 하신 말씀을 판단한다는 종교적인 명분으로 의회를 소집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늘면서 로마인들의 억압이 더욱 거세질 것을 걱정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위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 바탕에는 정치적 문제와 세속적 욕망과 악의가 도사리고 있을 뿐입니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품은 악의는 많은 유다인에게 전염되어 그들도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에 함께하게 합니다. 파스카 축제를 앞두고 “자신을 정결하게”(요한 11,55) 하는 대신, 자신들이 살길이라고 여기며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아 죽이려는 준비만을 할 뿐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이 악한 마음에서 비롯하기보다는 무사유, 곧 생각 없음에서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다른 이의 현실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할 때 비로소 악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넘쳐 나는 악에 쉽게 물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그분을 우리 안에서 죽이는 일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독점의식과 선민의식

주님의 죽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주님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데 오늘 독서와 복음은 그에 대한 답입니다.

“나 이제 떠나가 살던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한 민족으로 만들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셨다.” 

흩어져 있는 하느님 자녀들을 하느님 중심으로 모으시려다 돌아가신 겁니다. 이것은 복음 선포를 시작하시며 이미 말씀하신 바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이고 그래서 모임이 많습니다. 계 모임처럼 친목 모임도 있고, 학술 모임처럼 연구 모임도 있으며, 등산 모임처럼 동호회 모임도 있고, 상인 모임처럼 공동의 이익을 위한 모임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모임을 결성하려고 했다면 죽임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주님은 하느님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려 했기에 죽임당하신 것이고,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고 하셨기에 죽임당하신 겁니다.

헤로데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헤로데는 사람들이 자기 백성이어야 하고 자기가 그들의 임금이 되어야 하는데 주님이 그들의 임금이 되고 사람들이 주님 백성이 될 것 같으니 반대한 겁니다.

두 번째로 주님이 이스라엘 민족만 구하려 하셨다면 죽임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복음을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는 말씀, 곧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이스라엘 과부가 아니라 사렙타 과부에게 파견하셨고, 엘리사가 이스라엘 나병 환자는 놔두고 나아만만 고쳐주셨다는 말씀을 하시자 고향 사람들은 주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서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은 주님께서 모든 민족을 하느님 중심으로 모으시는 분이고, 흩어진 백성과 민족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오신 분이라고 우리에게 얘기하는데 선민의식이 강한 이스라엘 족속은 하느님이 이런 하느님이신 것이 싫었던 거지요.

자기들만 하느님 백성이고, 하느님은 자기들만의 하느님이시라고 믿는 것인데 지금도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일부 개신교들은 자기들 교회에 나와야지만 구원받는 선민 십사만사천 명 가운데 든다고 얘기합니다.

부모를 독점하려는 우리가 하느님마저 독점하려고 하지 않는지, 독점의식과 선민의식이 우리 신앙 안에도 박혀 있지 않은지, 하느님이 북한과 일본도 구원하시는 것이 싫지 않은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늘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준비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는 “사순시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결정적인 사건인 십자가 사건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 결정적인 사건이 어떻게 해서 벌어지게 되는지 그 단초를 제공해줍니다. 곧 유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죽이기로 결정한 사건을 전해줍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시던 중, 채 도달하기도 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곧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엠마오에서 라자로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번째의 표징’, 곧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표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표징이었습니다. 이를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어떤 이들이 이를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지도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유다 지도자들이 민심이 동요된 것을 두려워하여 최고 의회(산헤드린)를 열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은 메시아가 와서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재건하리라고 여겼고, 이러한 사실은 로마제국에게는 위협이 되었고 당시의 기득권을 갖고 있던 종교도자들에게도 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정과정이 참으로 묘합니다. 바로 그 결정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해의 대사제였던 가야파의 입을 통해 밝혀줍니다.

“온 백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서 죽는 것이 더 낫다.”(요한 11,50)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온 백성을 위한 대속’임을 밝혀줍니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요한 11,52)임을 드러내줍니다. 그리고 이는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것”(요한 11,51)이었습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오묘하게도 기회주의자인 가야파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밝혀주십니다. 그리하여,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백성들을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을 기다리며 파스카를 준비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이 “사순시기”의 막바지에서 예수님의 파스카를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준비해야 할까요?

주님! 제 안에 당신의 생명이 자라고 당신의 영이 흐르게 하시며, 제가 오늘 타인을 위하여 죽고 타인을 대신해서 죽을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1,50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주님!
겉치레 속에 교묘히 가리고 있는,
제 불신의 껍질을 벗겨 내소서.

신앙의 겉꾸밈 뒤에 감추고 있는,
제 허영과 자애심을 끊어내소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기고 있는,
제 위선을 몰아내소서.

빛을 비추시어,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의 어둠을 몰아내소서. 

제 안에 당신의 생명이 자라고 
당신의 영이 흐르게 하시며, 

제가 오늘 타인을 위하여 죽고 
타인을 대신해서 
죽을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흩어져 있는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어렸을 때, 친구들과 숨은그림찾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어린이 신문이 있었는데, 기사 내용보다 또 그 안에 실려 있는 만화보다도 훨씬 더 인기 있었던 것이 ‘숨은그림찾기’였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몇 개를 찾고 나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친구들이 모여들면서 함께 찾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우리들은 그 숨은 그림을 모두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옆에서, 위에서, 또 정면에서, 이렇게 다양한 방향에서 보니 쉽게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도 이런 숨은그림찾기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함께해야 삶을 쉽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또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가 있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며, 또 한 방향으로만 바라보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 주님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활동을 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선이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숨은 그림을 모두 찾았을 때는 커다란 기쁨도 함께 옵니다. 이런 기쁨을 나의 삶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과 함께하려 하고, 또 나의 이웃과 다양한 사랑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열린 마음을 가졌을 때, 내 삶에 숨어있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사순시기의 막바지에 있는 우리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믿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해서 회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합니다.
 
죽음으로 이어질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로마인들에게 짓밟힐 것을 두려워합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당시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로마에 대한 반역 모의로 평가받아 성전이 무너지고 다시 옛날과 같은 유배 생활을 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하느님의 숨은 뜻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는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드러내서 활동하셨지만, 그들은 한쪽으로만 보고 있어서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방향으로 바라보는 열린 마음으로 이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과 함께해야 하는 데 그들은 자기들 편한 쪽으로만 바라보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어떠할까요? 주님의 뜻을 여전히 이 작은 머리로만 쉽게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다양한 주님의 활동을 바라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타고난 구조물에 더 저장해야 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 랠프 월도 에머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한 치의 혀가 사람을 찌르고 사람을 죽입니다. 혀를 다스리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어이없이 죽어간 많은 이들을 기억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도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흩어진 우리를 하나로 모으시려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셔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자신의 뻔뻔함과 음흉함을 만납니다. 오늘도 이 하늘 아래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죽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수라는 이름은 한 조각 떠도는 뉴스거리에 불과합니다. 세상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의 욕심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십자가로 말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버려진 사람들을 기꺼이 껴안는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혀로 십자가를 질 수는 없습니다. 자신도 나누지 못하면서 내어주기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억압과 강요의 해결책이 아닌 자발적인 사랑의 나눔으로 우리를 사랑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을 살지 않기에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만이라도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제자신이길 기도드립니다.

 

 

 

요한복음 11장 5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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