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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4/10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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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유산을 받도록 빌어 주시네.

주님, 주님의 자비를 바라는 저희를 자애로이 보호하시어 더러운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한결같이 거룩하게 살아 영원한 상속을 받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4월 10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4월 1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4월 10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창세 17,3-9)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 오늘 복음
    (요한 8,51-59)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창세 17,3-9
오늘 제1독서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 무렵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요한 8,51-59
오늘 복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53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57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59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4월 10일
강인석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6:2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법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2).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지키면,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듯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보다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여깁니다. 아브라함과 예언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죽기 마련인데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조상이라고 말하는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예.’라고 대답하고, 안락함을 주었던 울타리를 넘어 떠나갔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시려는 계획은, 이 세상이 예수님을 믿어 은총으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걷는 이는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예.’ 해야 할 것을 입으로만 ‘예.’ 하지 않고, 또한 ‘아니요.’ 해야 할 것을 말로만 ‘아니요.’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이끄는 대로 받아들이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자유롭게 그 모든 벽을 넘어서서 하나가 되고 일치를 이룹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신 분, 영원을 사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6,33)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17,21) 하고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신망애 삼덕을 완성하는 믿음

구약에서 그리고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믿는 이들의 조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인 아브라함이 당신 오실 것을 믿음으로 내다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앞 문장에서는 주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고 함으로써 미래에 있게 될 것을 내다보고 즐거워한 반면에 뒤 문장에서는 실제로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내다보기도 하고 현재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것은 신비적 관상의 힘이고 환시를 볼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환시를 보게 되면 곧 영적으로 보게 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영원을 보게 되고 영원한 현재로 보게 되는 법이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도 아브라함처럼 당신을 믿고 아브라함이 보았던 당신을 같은 눈으로 보라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그런 눈이 없어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신비적 관상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지만 유대인들과 달리 우리도 미래에 있을 일을 내다보기도 하고, 주님을 현재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볼 수 있는 힘이고 능력입니다. 믿음에서 볼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인데 믿지 못하는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믿는 사람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도 한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잠재적 능력을 보고, 그의 가능성까지 내다보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그를 믿어주고, 그리고 그렇게 믿음과 신뢰를 받은 그 사람은 믿어준 대로 됩니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믿어주면 자식이 그렇게 되잖습니까? 그러니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무한능력 곧 전능하심을 믿는 것이 아닙니까?

인간에 대해서는 잠재력(Potential power)을 믿는다면 하느님께 대해서는 전능하심(Omnipotence)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에서 무한 가능성을 믿고 그래서 그것이 불가능이 없다는 희망을 낳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 불가능이 없을 뿐 아니라 그분을 믿는 이에게도 불가능이 없다는 희망을 지니게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불가능이 없다는 희망을 믿게 할 뿐 아니라 사랑을 믿게 합니다. 사실 전능하신 하느님보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더 완전하고 영적인 믿음입니다.

너무 길어지기에 여기서 마무리한다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은 희망을 믿고 사랑을 믿고 그래서 신망애(信望愛) 삼덕을 완성하는 믿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내 계명을 받들어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제와 어제 복음에서, 당신의 신원과 함께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위에서 오신 분’으로서 당신 말씀을 지키는 이는 생명을 얻고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마귀 들렸다고 비방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

여기서, “내 말을 지키는 이”란 곧 말씀을 진리로 믿고 받아들여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잠언>(4,6)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지혜를 저버리지 마라. 그것이 너를 보호해 주리라. 지혜를 사랑하여라. 그것이 너를 지켜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지키고 실행하는 것’이 곧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계명을 받들어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그리고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라는 말씀에서,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벗어난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뒤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오직 한분의 참된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또한 아버지께서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4,3)

하지만, 완고한 유대인들은 여전히 아버지도 그리스도도 받아들이지 않고 알아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브라함도 예언자들도 모두 죽었음을 들어 반박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여기서, “태어나기 전”은 ‘지나간 시간’을 나타내고, “전부터 있었다.”는 ‘현재’를 나타냅니다. 그러니 ‘항상 현재로 계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다.”고 하지 않으시고,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당신께서는 시간과 관계없는 ‘지속적인 현존’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언제나 존재하시며,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다가오시고, 먼저 건네주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언제나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펼치시는 이 사랑의 드라마에서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말씀을 지키게 하소서. 늘 함께 하는 당신 사랑을 지키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8,51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주님!
당신 말씀을 
지키게 하소서.

뼈 속에 새겨진 말씀이
심장에 와 타는 
불이 되게 하소서.

당신 말씀의 바퀴(영)가 
제 삶을 굴리게 하소서.

오늘도 저를 지키는 
당신 사랑에 따라 
말씀을 지키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랑하는 사람에겐 항상 ‘생명의 보증인’이 있다.

이번 대통령 파면 선고를 읽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가장 존경하는 분은 ‘김장하’ 선생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진주에서 한약방을 하며 아픈 사람을 위해 진료비를 싸게 하려고 했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몰렸으며 돈도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장하 선생은 아픈 사람들의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며 한 번도 차를 소유해본 적이 없고 버스만 타고 다니면서도 100억을 기부하여 고등학교를 세웠고 학생들 가운데서 똑똑한 이들에게 대학까지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돈은 똥과 같아서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악취가 풍기지만, 주위에 뿌리면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농부의 집 아이였던 문형배가 그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역시 김장하 선생의 뜻을 실현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그의 재산은 대법원장임에도 4억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인사청문회 때 아무리 탈탈 털어도 문형배 재판관의 흠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하느냐고 했을 때,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내가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으면 된다.”

이 시대에 정말 존경하고 모델이 될만한 어른이 없다고 말하지만, ‘어른 김장하!’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상을 받게 되기까지 그분의 삶은 숨겨져 있었지만, 자기만을 알도록 교육하는 이 시대에 큰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모든 재산을 이미 사회에 환원한 상태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받은 것이 이 사회에서 받은 것이라 여깁니다. 또 자신의 제자들과 학생들에게도 이 사회에서 받았기에 사회에 환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분은 이 사회가 바로 자신을 살려준 ‘생명의 원천’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이 실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부터 창조자가 아니었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자기 생존부터 생각해야 하는 본성을 지닙니다. 이것이 원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넘어서는 방법은 나를 책임져줄 누군가의 품에 머무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찰스 디킨스)에서 스쿠르지 영감은 욕심장이였고 조카에게까지 자비롭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죽음 이후의 심판이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 자신이 한 것에 대한 벌과 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고는 삶이 완벽히 변화됩니다. 누군가 자신의 상과 벌을 책임지는 보증인이 존재하기에 그의 이 세상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자캐오는 왜 자기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갖기 전까지는 소유욕이 사라질 수 없습니다. 소유욕이 있으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나의 생명을 보증해줄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이 가능해집니다.

이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사랑의 보증인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이시기에 생명을 잃는 것까지도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누군가 생존을 무릅쓰고 용기를 낼 수 있다면 반드시 보증인이 필요하듯, 우리가 이 세상에 베푸는 사랑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보증인이 되셔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니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다~’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생명을 받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그분은 아버지가 당신의 보증인이라고 하시며, 아버지께서 영원으로부터 생명을 주시기에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여기서 “있었다”는 하느님의 이름은 “있는 나”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 하나를 내 보겠습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하시길 바랍니다.
 
“한 아이가 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상 위에 튀어나와 있는 못을 발견합니다. 잘못하다가는 다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책상 위에 마침 못을 뽑을 수 있는 장도리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 옆에는 친구가 앉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많은 이가 대답하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장도리로 못을 뽑아 버릴 텐데,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는 말에 또 잘 생각하라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정답은 단순했습니다. 원래의 생각대로 장도리로 못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뽑히지 않으면 옆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간단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도 이렇지 않을까요?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냥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저 사람이 내게 해 준 것을 따지는 사랑이 아니고, 내가 받을 사랑을 기대하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실천하는 사랑인데 우리는 이것저것 따지며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지를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
 
이 말씀만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늘 나라의 표징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이로써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요한 8,55)라는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관점으로 또 세상의 관점으로만 생각하면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말하면서 계속해서 따져 묻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과거 유다인들이 보였던 닫힌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 마음을 활짝 열어야 삶을 단순하게 만들면서 주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우면 반드시 나 자신이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보상 중 하나이다

- 에머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지키지 않습니다. 사라지지 않을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는 지키며 삽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되시어 영원한 생명의 길을 만드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보게되는 생명의 길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열정과 사랑을 만납니다. 말씀을 닮은 생명입니다.

말씀을 잃으면 생명도 잃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말씀에서 만나는 생명의 기쁨입니다. 영원한 오늘을 살게 하는 지켜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죽음은 영원한 삶의 끝이 아니라 말씀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생명을 지켜주는 영원한 말씀을 믿습니다. 말씀과 함께 살고 말씀 안에서 즐기고 기뻐해야 할 말씀의 날 오늘입니다.

영원하신 오늘의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의 날 되십시오. 하느님을 아는 것은 말씀을 알고 말씀을 삶으로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5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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