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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5/09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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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당신 백성에 앞장서 나아가실 제, 그들 가운데 사시며 길을 열어 주실 제,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물이 되어 쏟아졌나이다. 알렐루야.

하느님, 저희를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시니 저희가 주님의 부활을 전하며 영원히 기뻐하게 하소서.

2024년 5월 9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5월 9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5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8,1-8)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고, 회당에서 토론을 하였다.

  • 오늘 복음
    (요한 16,16-20)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6,20)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요한 16,20)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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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사도 18,1-8
오늘 제1독서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고, 회당에서 토론을 하였다.

그 무렵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거기에서 그는 폰토스 출신의 아퀼라라는 어떤 유다인을 만났다. 아퀼라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다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자기 아내 프리스킬라와 함께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바오로가 그들을 찾아갔는데,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 


바오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옷의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로 갑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 티티우스 유스투스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는데,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다. 그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 


회당장 크리스포스는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다. 코린토 사람들 가운데에서 바오로의 설교를 들은 다른 많은 사람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다시 오리니 너희 마음이 기뻐하리라.

 

 

요한 16,16-20
오늘 복음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7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18 
그들은 또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내가 말한 것을 가지고 서로 묻고 있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5월 9일
정택찬 마르티노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12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조금 있으면

오늘 복음에서 유독 눈에 띄는 문학적 기법이 있습니다. 두 개의 대조되는 낱말을 조합하여 주제를 두드러지게 하는 방법입니다. “조금 있으면”과 “다시 조금 더 있으면”이 대조되고, ‘보지 못하다’와 ‘보다’가 대조되며, “근심”과 “기쁨”이 대조됩니다. 

“조금 있으면”이라는 구문은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오는데, 그리스 말 본문을 그대로 옮기면 “조금 있으면(‘미크론’) …… 다시 조금 있으면(‘팔린 미크론’)”입니다. 이 구절은 ‘보다’라는 동사와 연결되어,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지만 다시 조금 있으면 보게 될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내용을 만듭니다. 

제자들조차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며 술렁이자 예수님께서 그 의미를 설명하여 주십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니 ‘근심’스럽겠지만, 다시 조금 있으면 볼 수 있으니 ‘기쁨’을 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언급된 기쁨은 인간적 쾌락이나 즐거움과는 구별되는 매우 깊은 내적 감정으로,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깨닫는 역설적 신비를 일컫습니다. 상실을 체험하고 견딘 뒤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영적 기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빛나는 순간을 체험합니다. 이것은 은총입니다. 그러나 그 뒤 다시 어떤 사건을 만나면 이내 하느님의 부재를 느끼며 버려진 듯한 느낌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이것 또한 은총입니다. 슬픔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하겠지만, 조금 더 있으면 그 슬픔이 다시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 된다는 모순적 진리를 번갈아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어떤 순간에 체험한 가슴 아픈 ‘상실’이 조금 뒤에 지나고 보면 깊은 ‘기쁨’의 원천이 된다는 역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여정을 이끌어 주시는 분이 바로 ‘진리의 영’이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좋은 친구들만 만나는 게 최선일까?

조던 피터슨은 초 베스트 셀러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책식주의’라는 채널에서 ‘진정한 친구 가려내는 간단한 방법: ‘딱 한 마디만 해보세요.’라는 제목으로 각색하였습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아주 작은 동네에서 살았다. 죽마고우였던 나와 내 친구들은 서로를 ‘진짜’ 친구라고 믿었다. 멋모르던 학창 시절, 우리는 술을 마시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런 삶에 회의가 들었다.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은 꿈도 크고 목표도 높았다. 대학 생활은 평온하고 행복했다. 하루하루 인생이 더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과거의 굴레를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좋은 직장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잘 지내냐?” 어느 날 고향 친구 병식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향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몇 년 만에 다시 만났다. 병식이는 아직도 그때 그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고 삶의 모습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계속 어긋났다. 사업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는 나에게 병식이는 ‘내가 널 아는데, 그게 되겠냐?’라며 코웃음을 쳤고 내가 변했다고 말했다. 

병식이와 헤어지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엇갈린 삶을 살게 된 걸까? 병식이는 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조던 피터슨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렸을 적 친구가 아직도 안 좋은 친구들고 어울리는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그냥 그런 삶이 좋아서일 것이고, 두 번째는 의리 때문이며, 세 번째는 그런 친구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의 꿈을 긍정해주지 못하는 이들은 떠나라고 말합니다. 굳이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좋은 친구들과만 어울리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로 안 좋은 친구들도 만날 때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제자들 사이를 오고 가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아버지께 가는 길이고 부활은 다시 제자들에게 오시는 일이며 승천은 다시 아버지께, 성령강림을 통해서는 다시 교회를 만나러 오십니다. 

만약 부잣집 부모들 사교모임에서 돈만 있다고 계속 끼어있을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이미 자녀를 낳아 잘 기른 사람들입니다. 돈만으로는 거기 끼어있기 힘이 듭니다. 결혼하여 아기를 낳아 자신도 잘 길러야 함께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친구들과 사귀며 그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지 않았다면 하늘 나라에 만에 하나 들어갈 수 있을 지라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사귀고 세상으로 나아가 죄인들과 어울려야 하는 이유는 자녀로만 머무는 것보다 부모가 되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심으로 행복을 누리시는데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박보영 목사가 길거리 아이들을 데려와서 키울 때 아이들은 한 달만 지나면 슬슬 목사님과 함께 사는 삶에 싫증을 느낍니다. 이때 목사님은 그들이 이전에 입었던 냄새나는 옷을 다시 입어보게 시킵니다. 그들은 생질색을 합니다. 

내가 기도와 활동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죄인들도 만나야 하느님과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압니다. 그래서 다시는 뒤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을 불러준 것에 감사해서 또 그들도 자신들의 지위에 올려놓고 싶어집니다. 

이처럼 우리 관계의 모델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는 ‘조금 있으면 기도하러 갈게요.’라고 하느님께 말해야 하고, 하느님을 만날 때는 ‘조금 있으면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해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미국 출신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스물여덟에 윌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곳 생활을 통해 나온 그의 사상은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쳤지요. 
 
그의 책 중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큼 유명한 ‘윌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1800년대 당시에는 이 책이 사람들에게 전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윌든’은 소로의 두 번째 책인데, 1854년 출간 당시 총 7권이 팔렸다고 합니다. 팔린 책도 그의 어머니가 산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렇다면 첫 번째 책은 어떠했을까요? 1,000권을 인쇄해서 총 219권이 팔렸는데, 후에 나머지 책은 다락방의 단열재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사상에 감명받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법정 스님이,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도,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등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살던 시대에서는 이해해 주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삶을 묵묵히 살아온 소로의 모습에서 자기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남들처럼 살고, 남들 눈치를 보고, 남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나만의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남처럼 살기를 하느님께서 원하셨다면 우리를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창조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심지어 외모로 거의 같은 쌍둥이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이것만 봐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떤 목적으로 창조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나답게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겪을 고난과 부활을 알려 주십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당혹스러워하지요. 우선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고난이 예수님을 덮쳐서도 안 되고, 또 그런 일이 생기게 되면 울며 애통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께서는 굳이 이런 말씀을 미리 해 주셨습니다. 왜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나’답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나’는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나’가 아닌,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알려 주시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잊지 않고 성실하게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나’가 될 때, 우리가 가졌던 모든 근심은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과 반대되는 ‘나’가 된다면, 우리의 근심은 커다란 아픔으로만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병을 통해 나의 철학을 얻어냈다.

- 니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는 혼자 너무 많은 근심을 하며 살아갑니다. 근심과 걱정은 우리를 찌르며 오늘을 마구 밀어냅니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되는 우리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입니다. 우리의 미련함이 우리를 묶습니다.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시간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전긍긍의 시간이 아니라 나누어져야 할 기쁨의 시간들입니다. 근심에 묶여 우리는 하느님을 잊고 삽니다. 하느님에게서 기쁨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자신입니다. 

잠시도 떠난 적이 없으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만들어 가시는 진정한 기쁨입니다. 작은 기쁨들이 만들어가는 행복입니다.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근심을 통과한 기쁨이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조금 있으면 십자가도 부활이 될 것입니다. 마침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기쁨이 기쁘게 열리는 새로운 오늘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무엇인지요. 기쁨의 하느님이십니다. 기쁨을 이루시는 하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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