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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5/06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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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자비로우신 하느님,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저희가 언제나 그 풍요로운 신비를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2024년 5월 6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5월 6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5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6,11-15)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 오늘 복음
    (요한 15,26─16,4ㄱ)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사도 16,14)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사도 16,14)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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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사도 16,11-15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시고 너희도 나를 증언하리라.

 

 

요한 15,26─16,4ㄱ
오늘 복음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5월 6일
정택찬 마르티노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6:09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소통이 쉽지 않은 이유

요한 복음서의 긴 ‘고별 담화’가 마무리되면서, 오늘 복음은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심을 예고합니다. “보호자”로 옮긴 그리스 말 ‘파라클레토스’는 ‘파라’(- 주변에, - 옆에)와 ‘클레토스’(‘칼레오’ 동사의 수동태, ‘불린’ 또는 ‘부름받은’)가 합성된 낱말입니다. 

직역하면 ‘어떤 것 주변에 있도록 부름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곧 ‘파라클레토스’는 우리 주변에 늘 함께하도록 불린 존재를 뜻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성령’이 “진리의 영”으로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증언’하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어떤 것의 ‘증언’이 필요한 경우는 관련 사건의 정보나 진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을 때입니다. 법정에서 증인은 그때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고,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분별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제자들’이 “나를 증언할 것”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존재와 신원에 의문이 생길 때 그분의 말씀과 행적이 모두 ‘진리’였음을 증언할 존재는 성령과 제자들입니다. 물론 이들이 ‘증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함께한’ 이들만이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이에 소통이 쉽지 않은 이유는 누구의 문제라기보다 처음부터 서로 ‘함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이기에 시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함께하지 못하니 소통에도 한계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소통’은 우리의 마음까지 아시며 “처음부터 나와 함께” 계신 ‘진리의 영’과만 가능합니다. 참된 보호자이시고 변호자이시며 증인이신 성령! 이제 다가올 성령 강림 대축일에 우리가 받게 될 최고의 선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께 여지를 드리기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다 미래형의 말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를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면 당신이 성령을 보내주실 것인데 성령께서는 한편으로는 진리의 영으로서 당신의 진실을 증언하실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이 돌아가신 뒤 박해를 받게 될 제자들을 보호해주실 터인데 그것은 제자들이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제자들도 당신을 증언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박해가 제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할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고 수긍할 수 있는 말씀인데 그런데 그런 제자들이 당신을 증언하게 될 거라는 말씀이 일단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일단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일단이라는 말이 많은 경우 일단(一旦)의 뜻으로 쓰이지만 이 경우엔 일단(一段)이라는 뜻으로 제가 쓴 것이며 다음에 이단(二段)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당신의 말씀과 달리 제자들이 당신을 모른다고 하고 도망쳤으니 일단은 주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결과이고 그래서 그런 제자들이 당신을 증언할 거라는 말씀이 일단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단은 인간의 단계(段階)입니다. 그리고 이단은 성령의 단계(段階)입니다. 일단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도망치고 봤는데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자 새로운 단계 곧 이 단계인 성령의 단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 단계에서 이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소위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 제자들에게 요구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처럼 하느님도 손쓸 수 없게 자기가 완전히 끝장을 내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데 열한 제자는 주님을 배반했지만 그리고 비록 두려움 때문에 다락방에 숨어있었을지라도 다행히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지요. 

여기에 우리가 오늘 배울 것이 있습니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될 때도 내가 끝장내지 않고 하느님께 여지를 드리는 것 말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위한 여지는 없습니까? 하느님께 여지를 드릴 여유가 나에게 없습니까? 나로 가득하여 우리에게 하느님을 위한 여지는 없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여지랄까 말미를 드리면 그 여지에 하느님께서 성령과 작당하여 모의하실 것이고 그래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다락방을 박차고 나와 마침내 주님의 예언대로 주님을 증언하게 될 것이며. 오늘 리디아의 마음을 연 바오로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주님을 믿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뭐든 우리가 끝장내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 여지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피밖에 없다.

영화 ‘수상한 그녀’(2013)는 일찍 남편을 잃고 평생을 아들 하나 키우며 살아온 욕쟁이 오말순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오말순 할머니는 싸움닭입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인 오말순 할머니 때문에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집니다. 손자들은 엄마를 위해서라도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게 낫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오말순 할머니는 쓸모없어진 자신을 한탄하며 한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젊어진 것입니다. 처음엔 가족도 걱정이 되었지만, 이젠 자신이 하고 싶었던 가수의 꿈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보려 합니다. 점점 유명해지고 사랑도 싹틉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밴드에 자기 손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수술을 위해 긴급히 피가 필요합니다. 손자와 피가 맞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그러나 피가 빠지면 다시 늙게 되는 것을 압니다. 

젊어진 오말순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수혈하기로 합니다. 이때 그 젊은 여자가 자기 어머니인 것을 안 아들은 어머니에게 떠나라고 말합니다. 자기 아들은 자기가 알아서 살릴 테니까, 이젠 자신들 위해 희생하지 말고 당신 인생을 살아보라고 합니다. 붙들이라고 불리던 아들의 대사입니다. 

“갓난쟁이를 남편도 없이 키우던 젊은 여자가 있었어요. 근데 그 갓난쟁이가 병이 났는데 도통 낫질 않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목숨줄을 놓으려고 했지요. 근데 그 갓난쟁이 엄마는 너무 가난해서 해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가슴으로 끌어안고 눈물로 말했어요. ‘붙들어라. 목숨처럼 붙들어라.’ 그냥 가세요. 그냥 가셔서 남이 버린 시래기도 주워 먹지 말고 그 비린내 나는 생선 장사도 하지 말고 자식 때문에 아귀처럼 살지 말고 명 짧은 남편도 얻지 말고 나처럼 못난 아이도 낳지 마세요. 그러니 제발 가세요. 엄마.”

그냥 가면 엄마가 아닐 것입니다.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난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살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란다. 그래야 내가 네 엄마고 네가 내 자식일 테니까.”

아들에게 어머니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피’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피는 곧 성령이다.”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의심될 때 어머니께서 흘리시는 피를 보았습니다. 단팥빵과 흰 우유, 그리고 삼겹살과 휘어진 발가락과 굳은살. 이것이 그분이 누구인지 증명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 주는 것은 어머니의 피입니다. 어머니의 피는 곧 아버지의 피이기도 합니다. 그 피를 통해 나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자기 아버지를 전쟁 통에 잃은 딸에게 친척은 “아버지는 딸의 손을 절대 놓지 않아!”라고 말해줍니다. 이것이 진짜 아버지를 증명해 줍니다. 얼마 전에 “수술 4번 받고 교실 왔는데…‘눈물 버튼’ 눌러버린 선생님”이란 동영상이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한 달 만에 반에 왔지만, 반 아이들이 신경을 써 주지 않습니다. 서러움에 울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를 놀래주기 위한 이벤트였습니다. 케이크도 준비되어 있었고 노래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엉엉 웁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준비한 그 노력이 성령님입니다. 그 성령님은 아이에게 이 아이들과 선생님이 진짜 자신의 친구들과 선생님임을 알게 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고, 이 진리의 성령을 주는 방법은 곧 피 흘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피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누구셨는지는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고 그리스도를 우리가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을 감고 책의 내용을 음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 책상 위가 너무 지저분한 것이 딱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된 것일까요?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누가 와서 난장판으로 만든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원래 지저분했는데 느끼지 못했고 또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책 내용을 되새기고 나서 눈을 떴을 때 그 지저분함이 보인 것입니다. 이 눈을 감고 드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는 성찰의 시간과 같지 않을까요? 
 
성찰해야 주님과의 관계가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성찰 없이도 주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도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도, 심지어 식사할 시간조차 없었는데도, 외딴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세상 안에 있지만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느끼지 못할 때, 그리고 주님의 뜻보다 세속적인 마음이 더 크게 일어날 때, 잠시 눈을 감고 스스로를 바라보며 주님께 향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세상 안에 있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느끼며 큰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이런 사람이 주님께서 보내신 보호자, 진리의 영, 성령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성령은 세상에 주님을 힘차게 증언할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의해 내쫓겨도,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진리의 영을 통해 용기를 얻어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순교자가 이런 삶을 사셨고, 우리에게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희망 안에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보는 우리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과거만을 바라보면서 지금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시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벗어던져야 합니다. 세상만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시선이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것, 성찰을 통해 또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착각은 모두 벗어 던지고, 깊은 성찰과 성령의 도움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철저히 주님께 향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지금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삶에 질문하지 말고 삶이 던지는 물음에 “예”라고 답하라.

- 빅터 프랭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우리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고 사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변화에 우리가 협력하고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지켜야 나눌 수 있고 걸려 넘어져야 일어설 수 있는 진리를 뜨겁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으신 진리의 영은 온전한 진리로 우리를 이끄시며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을 증언하시며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진리의 영이시며 보호자이신 성령께서는 새로운 차원에서 예수님의 선물이 되십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하는 사랑과 일치가 되십니다. 

우리의 살을 변화시키십니다. 진리의 영께서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삶으로 우리를 바꾸어 주십니다. 거짓 자아를 허물고 진리를 다시 세우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 성령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모든 것들이 새롭게 살아납니다. 성령은 누구십니까. 새 마음이 생겨나게 하시는 새 마음의 성령이십니다. 기억 밖의 예수님이 아닌 살아계신 말씀과 진리로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곳에는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진리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구원자를 알게되었고 구원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방식으로 생명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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