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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8월 7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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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9주일 -

 

 

2022년 8월 7일 연중 제19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다고 전합니다.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라며,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이르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8월 7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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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루카 12장 32-48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표창연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022년 8월 7일 (일)
표창연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강론

 

 

2022년 8월 7일 (일)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

 

로마 제국에서 부유한 도시였던 폼페이의 어떤 프레스코화에는 주인과 세 명의 종이 나옵니다. 

종들은 서서 허리를 숙이고 주인의 식탁에서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한편 동방 교회의 어떤 프레스코화에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맨발의 예수님께서 식탁의 맨 끝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맨발은 종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오히려 맨 끝자리에서 그들을 섬기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구도의 그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현세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어떤 주인이 혼인 잔치에 참석하려고 자기 집을 종들에게 맡기고 떠났습니다.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 돌아올지는 몰랐습니다. 주인이 한밤중에 올지 새벽녘에 올지 몰랐기에 종들은 언제든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깨어 있어야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아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주님을 만날 때를 준비하며 사는 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은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종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만족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깨어 있을 수가 없고,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는 깨어 있는 삶을 위하여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으라는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한 삶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고해성사는 신자도 사제도 깨어 있게 하는 삶의 좋은 방식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으라는 말씀은 그분의 제자인 우리가 언제나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수없이 오셨지만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해서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든 다시 오실 것입니다. 깨어 삽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황송한 사랑에 황송한 행복의 관계

 

많은 분이 제가 하는 여기 밥상에 대해서 알고 계시고, 많은 분이 실제로 여기 밥상을 이용해주셨습니다. 

이 밥상은 생일이나 축일 등 중요한 날에 제가 육신의 식탁도 차려드리고 영적인 식탁인 미사도 드려드리는 개념인데 제가 이것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오래전이고 오늘 복음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오늘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주인과 종의 얘기는 주인을 깨어 기다린 종에게 주인이 손수 식탁을 차려주시고 시중을 드신다는 얘깁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다른 복음에서는 아무리 일을 힘들게 했을지라도 주인은 종에게 쉬라고 하지 않고 주인을 위해 식탁을 차리라고 할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함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이 보통의 주인과 종의 관계인데 오늘 주님께서는 그 반대로 하신다니 실제로 이렇게 되면 종은 너무도 행복하고 다른 한편 너무도 황송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여기 밥상도 이런 황송한 행복을 누리는 분도 있지만 너무 부담스럽고 편치 않아 이용하지 못하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과 종의 이런 행복한 관계가 우리와 주님 사이에 맺어져야 하고, 우리는 주님의 이런 황송한 사랑에 황송한 행복을 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복음적인 관계가 우리 사이에도 이루어져야 하고 그래서 오늘 복음의 주님은 행복한 집사에 대해 이렇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집사도 주인에게는 종이지만, 주인 대신 종들을 관리하는 종입니다. 그러니 주인에게는 밑에 있지만, 종들에게는 위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종에게 상을 차려주시고 시중을 든다는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너희도 서로 발을 주라고 하신 것처럼 집사인 우리도 서로 상을 차려주고 시중들라는 말씀이고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지혜롭고 충성스러우며 그렇게 할 때 행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정체성, 집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인데 부끄럽게도 저는 집사건 종이건 종의 정체성을 거부했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하느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순간 저는 그분의 종이 되기 때문이고, 마리아처럼 주님의 종이오니 당신 뜻대로 되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다가 삼십을 넘어 사십을 향해 가며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뜻보다는 하느님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먹고 노력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력한다는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니 노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저는 하느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내 뜻대로 하려고 하기에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내 맘대로 하려고 하거나 내 맘에 들기를 바라기에 이웃에게 함부로 합니다. 

어제도 선교협동조합 월례회 미사를 하고 미사 참석자들과 식사를 즐겁게 했는데 주방에 들어가니 주방 도구들이 어지러웠고 그래서 순간 화까지 나지는 않았지만 저의 정신이 어지럽고 짜증 비슷한 것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미사 때 기껏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집사에 대해 강론하고는 내 맘에 들지 않는 것 때문에 주변에 감정 폭력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불충한 종처럼 술 취해 이웃을 때리는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는 않지만 화나 짜증 같은 감정 폭력은 가하곤 하는데 이게 다 자기 뜻대로 하려 하거나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공자가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고 육십에 그 하늘의 뜻에 순응하게 되며, 칠십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에 어긋남이 없게 돼야 한다고 하였고, 프란치스코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육십을 넘어 칠십을 향해 가는 제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가 될 수 있을지 한탄하며 뉘우치는 오늘 새벽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랑이란? 상대의 보석함이 되어주는 것.

 

금쪽같은 내새끼 93회에서 오은영 박사는 엄마에게 묻습니다. 

“어머니는 금쪽이가 미우세요?”

금쪽이는 14세 딸입니다. 엄마와는 대화하지 않고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채팅 중독입니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가출하라고 해서 가출한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신고하여 돌아오기는 하였습니다. 

금쪽이는 극단적인 생각도 자주 합니다. 엄마와 남동생은 행복한 것 같고 자신만 외톨이가 된 것 같습니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도중 자신은 죽어도 엄마와 남동생은 슬퍼할 것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 엄마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까요? 엄마는 한다고 합니다. 딸을 앉혀놓고 대화 좀 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그 대화가 너무 일방적입니다. 야단치는 것에 머뭅니다. 딸은 말합니다. 

“엄마만 힘들어?”

엄마는 딸에게 섭섭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에 남편이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 아픈 마음을 딸은 몰라주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아빠에게는 편지를 써도 자신에게는 무심한 딸에게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못합니다. 

남동생도 그러나 자신에게만 잘해주는 엄마가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엄마와 누나 사이가 좋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왜 세 명 모두 아빠를 다 좋아할까요? 아빠는 돌아가셨는데 말이죠. 아빠는 그들의 속마음을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기 말만 합니다. 그리고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말을 막아버립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엄마와 아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일방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먼저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하셨다고 하십니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루카 12,32)

그러고 나서 우리도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루카 12,33)

이렇게 내어놓고 또 내어놓게 하는 삶을 예수님은 ‘깨어있음’이라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

그리고 특별히 더 내어주어야 하는 주님 제자들에게는 더 내어놓아야 한다고 명하십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 안에는 주는 것과 요구하는 것이 균형 있게 공존합니다. 무작정 주는 것만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선을 베풀라고 할 때는 나 자신을 상대의 것을 넣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비우는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내 안에 자신의 것이 들어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보석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보석이 들어있는 보석함이 가장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사랑은 내 보석을 상대의 보석함에, 상대의 보석을 내 보석함에 옮겨 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상대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내 보석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자선의 목적입니다. 

하느님은 에덴동산을 주시고 가만 있지 않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당신 위해 소중하다고 여기는 선악과를 바치기를 원하셨고 서로 협력하여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그만큼 노력이 많이 들어간 곳이 될 때 에덴동산에 대한 애착도 더 커지는 것입니다. 

태국 광고 중 말을 못 하는 아버지와 사춘기 여자 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어장애인 아버지를 둔 딸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해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딸을 나무랍니다. 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딸은 자살을 시도하고 아버지는 자기 피를 딸에게 줍니다. 이것이 자선입니다. 자선의 결과는 어떨까요? 딸은 깨어나서 잠들어 있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습니다. 아버지가 딸의 소중한 것을 맡을 수 있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딸은 자기 손을 맡아 놓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소중한 보석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자기 삶은 아주 평범하고, 특별한 일은 평범한 우리 삶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어느 형제님도 자기에는 아주 평범한 일만 계속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라는 것입니다. 큰 걱정과 함께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심각한 암이고 수술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 분야의 권위자라는 소리를 듣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수술받았고, 수술이 잘 끝나 회복 중에 계십니다. 
 
몇 달 동안 계속된 특별한 일로 인해 형제님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살 때, 건강에 더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십니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디스크 수술 이후 허리 코어 운동으로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열심히 운동하느냐고 묻자, “아프지 않으니까 운동을 안 하게 돼.”라고 말합니다. 평상시 운동해야 아프지 않을 텐데, 세상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운동하지 않으니 또 아프고 다시 후회하게 된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늘 준비하지 않아서 후회하게 됩니다. 주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뒤로 미루면서 주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마지막 순간에 큰 후회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명백해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보화가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에 맞춰 사는 사람이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사람들이 길을 떠날 때, 일할 때, 또는 식탁이나 예식에 참석할 때 준비하고 있는 옷매무새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등불은 어두움을 밝히는 도구로 깨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잘 준비하는 충실하고 현명한 종이 될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떠날 때 맡긴 직무에 대하여 충실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일 처리를 했느냐에 대한 점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것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커다란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날, 가장 큰 기쁨으로 주님과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넘어져도 괜찮다. 당신은 넘어진 만큼 전진했다.

- 빅터 기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루카 12, 37)

 

오늘 우리는 정녕 행복한가? 행복은 매일 살아가는 우리들 삶 속에 있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같이 주님을 향해야 한다. 모든 것의 기본은 우리들 마음이다. 마음이 병들면 이 모든 것은 말할 나위 조차 없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이다. 참된 관계는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마음 가짐은 마음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공동체란 주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랑의 결합체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가 없다. 사랑의 마음 사랑의 실천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참된 소임이다.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깨어있는 행복 준비하는 가운데 맞이하는 행복이다. 주

님 덕분에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진실로 깨어있음은 나눔이 되고 참된 나눔은 우리의 충실함이 되고 충실함은 곧 행복한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이 행복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행복한 사람이길 간절히 바라신다. 주님과 함께 가장 행복한 오늘 주님의 날 사람의 날이다. 사람은 행복해야 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행복은 가장 큰 우리의 소명(召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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