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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8월 6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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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

 

 

2022년 8월 6일 (토)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 연로하신 분이 옥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고 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옷이 새하얗게 빛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8월 6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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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외아드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때에 율법과 예언서의 증언으로 신앙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저희를 자녀로 삼으실 것을 미리 알려 주셨으니 하느님의 종인 저희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과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루카 9장 28ㄴ-36절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그때에 

28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35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36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천영수 마론 신부 강론

 

 

2022년 8월 6일 (토)
천영수 마론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김주신 멜키올 신부 강론

 

 

2022년 8월 6일 (토)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기도가 필요한 시간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전하며, 다른 공관 복음서들과 달리 그분께서 산에 오르신 까닭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그곳에 가셨습니다. 

루카 복음에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자주 나옵니다. 그분의 세례와 공생활, 열두 제자의 선발, 베드로의 신앙 고백, 거룩한 변모, 주님의 기도, 겟세마니, 그리고 십자가 수난과 같이 당신 생애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관점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른 당신의 인생을 볼 수 있으셨고 그것으로 당신의 인생을 비추어 살피셨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관점에서 성공하는 삶이 아닌 실패하는 삶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할 사명을 받으셨음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복음서의 중반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성공적이지 못한 인생을 살고 계시다는 몇 가지 신호가 나옵니다. 

군중은 처음에는 예수님께 몹시 열광하였으나 점차 예수님을 버리고 그분 뒤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늘어난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계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길이 과연 어떤 길인지 알고자 하셨고, 이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얼굴 모습이 변하고 빛났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드리시는 가운데 당신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셨다는 뜻일 것입니다. 루카 복음은 친절하게도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나누신 대화를 전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율법서를 대변하는 모세, 예언서를 대표하는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며 성경 말씀을 통하여 당신께서 나아가실 길, 곧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나아가시는 그분의 파스카(건너감)를 깨닫고 이것을 받아들이셨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맞서야 할 현실 세계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떠올리면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나아갈 길을 깨닫고 다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길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십자가의 길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 때문에 자기 인생을 내주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간다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높여주시도록 낮추는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공적인 드러냄은 아니고 사적인 드러냄 또는 사적 계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보여주신 이유나 목적도 사적이라고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제자 앞에서 그리고 열두 사도가 모두 있는 곳에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드러내시지 않았으니 공적인 드러냄은 분명 아니지만 세 제자만을 위해서 특별한 현시를 하신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물론 개인을 위해서 사적 계시를 하시기도 합니다. 계시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깨달음을 사적으로 주시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그 개인을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제자에게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이신 것은 다른 이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그들에게만 보이신 것이니 특별한 은혜인 것은 틀림없지만 사적인 것이 아님은 물론 지금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주신 은혜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금을 위한 것도 아니라면 미래의 제자들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미래 공동체가 함께 어려움에 처할 때, 그렇게 대단하시던 주님이 힘없이 돌아가셨을 때, 그래서 주님을 중심으로 모였던 공동체가 뿔뿔이 흩어져 공동체가 무너질 지경이 되었을 때, 그때 지금 본 것을 떠올리라는 것입니다. 

이분이 이렇게 초라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때 기억하라는 것이요 낙심하고 포기하려는 다른 제자들에게는 힘이 되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금 본 것을 지금은 얘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당신의 정체는 비밀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 제자는 왜 그래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아닌 사람이 되신, 그 육화의 삶을 온전히 사셔야 하기 때문일 것이고, 제자들은 그 사랑만 기억하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라는 필리피서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인간으로 사실 때는 철저하게 사람의 아들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님을 하느님께서는 들어 높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하셨다고 필리피서는 또한 노래하지요.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낮추시고 하느님께서는 높이셨습니다. 자신은 낮아지고 그리스도는 높아져야 한다고 세례자 요한은 얘기했습니다. 당신은 누구시오며 벌레만도 못한 나는 누굽니까 하고 프란치스코도 기도했습니다. 

이 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또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도록 여러분도 겸손해지십시오.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께서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에게 남겨 두지 마십시오.” 

이 프란치스코의 권고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시고 변모시켜 주시도록 우리는 자신을 오늘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위치시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텔레비전을 거꾸로 놓고 본다면 어떨까요?

 

텔레비전 안에 등장하는 사람의 머리가 화면 아래에 있고, 다리가 화면 위에 있습니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화면이 거꾸로 놓여 있으면 정신없어서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텔레비전을 거꾸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거꾸로 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현재 카이스트 총장으로 있는 미래학자 이광형 박사님이십니다. 
 
뇌의 활동을 고정화하면 앞으로 사고의 변화를 가져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거꾸로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습관도 나의 것으로 만들 힘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변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몸이 적응하기 때문에 충분히 변할 수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 갔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처음에는 시차 때문에 고생합니다. 낮과 밤이 완전히 거꾸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행 내내 힘들까요? 아닙니다. 빠르면 2~3일 이내에 적응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변화할 수 있습니다. 
 
변화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다 변화시킬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냅니다. 거룩한 변모 사건을 통해 비록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지만, 결국은 하느님의 영광을 빛내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있다는 것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이고, 엘리야는 예언서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를 죽음으로 완성하여 구원의 새로운 장을 여시는 분입니다. 결국, 이 삼자대면은 구약시대의 유산이 신약 시대로 넘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변모 사건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단순히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수난과 죽음을 거쳐서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환하게 드러날 것임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그 자리에 머물면, 하느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하늘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람에겐 친구와 적이 필요하다. 친구는 충고를, 적은 경고를 준다.

- 소크라테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루카 9, 29)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우리들 정체성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기도도 실천이고 변모도 실천이다. 신앙의 밑거름은 우리 생활의 변화와 배움의 실천이다. 

거룩한 변모는 하느님의 사랑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를 일깨워준다. 작은 씨앗이 껍질과 땅을 뚫고 드디어 새싹을 틔운 뜨거운 변모를 우리는 만난다. 새로운 변모의 모색이 없다면 급변하는 이 시대의 징표를 결코 읽을 수 없다. 

나무들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다. 변화와 발전은 수평적 결정과 쌍방향 의사소통으로 창조적인 변모를 불러일으킨다.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와 함께 호흡하시며 우리에게 맞는 변모를 이끌어 가신다. 

변모의 주체는 우리들이다. 우리들의 변모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먼저 기도하시고 먼저 변모하신다. 변모를 가로막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는 우리들 자신이다. 과거와 같은 일방적 의사소통과 수직적 리더십이 아닌 수평적 변화와 쌍방향 의사소통의 변모이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마음의 맑은 변화와 생활의 건전한 변모에 있음을 믿는다. 거룩한 변모는 거룩한 절제이며 거룩한 실천이며 살리는 소통이다. 변모와 생활은 기도로 하나의 내용이 된다. 기도와 실천 변화와 변모 참여와 창조로 사람의 길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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