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025년 2월 24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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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집회 1,1-10)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다. - 오늘 복음
(마르 9,14-29)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 오늘 말씀 카드
(마르 9,24)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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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1,1-10
오늘 제1독서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다.
1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2
누가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날들을 셀 수 있으랴?
3
누가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를, 심연과 지혜를 헤아릴 수 있으랴?
4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명철한 지각도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다.
5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
6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계시되었으며 지혜의 놀라운 업적을 누가 알았느냐?
7
지혜의 슬기가 누구에게 나타났으며 지혜의 풍부한 경험을 누가 이해하였느냐?
8
지극히 경외해야 할 지혜로운 이 한 분 계시니 당신의 옥좌에 앉으신 분이시다.
9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알아보며 헤아리실 뿐 아니라 그것을 당신의 모든 일에,
10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주님의 사랑은 영광스러운 지혜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 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마르 9,14-29
오늘 복음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2월 24일
김명호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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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황홀하고 경이로운 체험을 하고 타볼산에서 막 내려온 예수님과 세 제자가 마주한 현실은 일상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삶의 전형적인 그늘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를 향한 예수님의 탄식은 그분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토록 믿음을 가르쳐도 딱히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하실 법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귀머거리 영을 쫓아내심으로써 더러운 영에 붙들려 자신을 잃어버렸던 아이를 본연의 자기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 앞에서 발악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고 그 아이의 몸속에 있는 더러운 영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살아가면서 죄와 악으로 그 모습이 더럽혀질 위협을 당합니다. 믿음과 기도, 이 두 가지가 더러운 영의 공격 앞에서 우리 안의 하느님 모습을 지켜 낼 수 있게 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믿음이, 제자들에게는 기도가 부족하였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의 아버지와 제자들에게는 두 가지가 다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겸손한 기도로 믿음을 얻고 해방된 아이를 되찾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우리는 믿기 위하여 기도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믿는다고 말하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믿고 기도하게 하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하자고 초대합니다.
“믿음은 기도를 샘솟게 하고 샘솟는 기도는 믿음을 튼튼하게 해 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누가 덕을 지닐까? 누가 덕 농사를 잘 지을까?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오늘 집회서의 시작은 지덕(智德)에 관해 얘기하고, 오늘 복음은 신덕(信德)에 관해 얘기하기에 오늘은 어떻게 덕들을 지닐까에 관해 묵상코자 합니다.
오늘 저는 덕을 ‘쌓을까’대신 ‘지닐까’하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덕을 쌓는다고 흔히 얘기하잖습니까? 그리고 이는 한자어의 적선(積善)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적선을 말 그대로 풀이하면 선을 쌓는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선이나 덕을 내가 쌓는 것으로, 내가 농사지어 낟가리를 높이 쌓듯이 쌓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러니까 나의 수행이나 노력의 결실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교는 덕과 선 모두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이라고 얘기합니다. 만선(萬善) 만덕(萬德)의 근원이신 하느님이라고 흔히 얘기합니다.
‘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에서 그는 왜 많은 사람이 자기를 따르는지, 자기의 덕을 칭찬하는 맛세오 형제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그 놀라운 일을 위해서 그 이상 더 천한 피조물을 찾지 못하셨기에 나를 택하시어 이 세상의 존귀한 자, 아름다운 자, 강한 자,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그래서 만선만덕(萬善萬德)은 창조주 하느님께 오는 것이지 결코 피조물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며,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아니더라도 하느님을 겸손하고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만선 만덕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고, 모든 것은 모든 선이신 하느님께 나온 선들이라고 믿는 것이 프란치스칸 영성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믿음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덕과 선을 어떻게 하면 지닐 수 있겠습니까? 아주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주십사고 청하면 되고 기도하면 됩니다.
오늘 어떻게 하면 악령을 쫓아낼 수 있겠냐는 제자들의 물음에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청하려면 가난의 자세, 네겐 없다는 자세가 필수입니다. 오늘 아이 아버지가 믿음이 없다고 꾸짖음을 듣자 취한 태도, 믿음이 없으니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달라고 한 태도 말입니다.
사실 자기에게 믿음이 있다거나 지혜가 있다는 사람은 청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없으면서도 청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없지만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가 없는 사람 중에서도 지혜가 없는 사람이고 우리가 흔히 무지막지(無知莫知)하다고 할 때 그런 사람입니다. 받아 지녀야 하는데 받지 않아 지혜가 없고 그래서 지혜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의 가난을 인정하고 청하는 겸덕(謙德)이 있는 사람이 지혜롭고, 이런 사람에게 하느님은 지혜를 후하게 주신다고 집회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그것을 당신의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이것이 우리 교리에서 말하는 주부덕(注賦德)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리는 습득덕(習得德)도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쏟아부어 주신 덕(주부덕)을 매일같이 갈고닦아 그 덕을 내 덕으로 만드는 것이 제 생각에 바로 습득덕입니다.
하느님이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셔도 그것을 흘려버리지 않고 농사에 잘 활용해야 곡식이 영글듯 덕(德) 농사도 그렇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믿음에서 나오는 기도의 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벙어리 영이 든 아이를 치유하시는 장면입니다. 사실, 이 장면은 제자들이 망신당하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자들이 스승을 망신시키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벙어리 영을 쫓아내지 못함으로써 스승을 욕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혹시 스승을 망신시키는 일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주어야 한단 말이냐?”(마르 9,19)
이는 우리가 ‘참 믿음’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고 참아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나마 이렇게 하느님의 자녀로 머물 수 있음은 그분께서 참아주고 기다려주시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신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계시고, 우리를 믿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신의 그 믿음과 그 희망에 의탁하여,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간청해야 할 일입니다.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마르 9,22)
여기서, “하실 수 있으면”이라는 표현은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에,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에 의탁해서 도움을 청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믿음을 북돋우십니다. 곧 ‘믿음’을 주십니다. “믿는 이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마르 9,23).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간청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그는 ‘믿음’과 동시에 ‘믿음 없음’을 고백하면서, 겸손으로 도움을 청합니다. 우리가 믿고는 있지만, ‘진정한 믿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믿음을 청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믿지 않는 것을 청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기도할 때 우리는 이미 믿는 것’입니다. 동시에 ‘기도를 통하여 믿음이 옵니다.’ ‘믿음’(응답)은 ‘들음’(계시)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하시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따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십니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마르 9,25)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누구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당신 말씀의 권능으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십니다. ‘말씀의 권능’을 깨우쳐주심과 동시에, 말씀의 권능을 지니신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마르 9,28) 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아이를 고친 것은 믿음에서 나오는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이 없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곧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도 망신당하고 스승이신 예수님을 욕보이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아이의 아버지처럼,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분의 믿음에 의탁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9,29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주님!
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보다
당신 뜻에 합당하게 하소서.
제 기도가 제 뜻이 아니라
당신 뜻에 달려 있게 하소서.
당신이 제게 응답하기보다
제가 당신 뜻에 응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당신 안에서 자유로워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믿음이 없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
신앙인 대부분이 그러하시겠지만, 저도 항상 어디를 갈 때 함께 가는 이들에게 묵주기도 5단을 하자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안전한 여행을 위해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우리가 그렇게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면 ‘기도했으니, 지켜주시겠지!’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7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전에는 연옥에 당연히 갈 것이라 여겼지만, 하면서 연옥에 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점점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대로 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기도를 통해증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장면을 마주합니다. 어찌 보면 이 말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라고 하심으로써, ‘믿음’이 구체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임을 강조하십니다.
영화 ‘사인즈(Signs)’ 속 그레이엄은 성공회 사제입니다. 아내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귀여운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그레이엄은 하느님이 계신다면 어째서 자기 아내를 데려갔느냐며 사제복을 벗었습니다.
그런데 마을과 세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외계인이 침공한 것입니다. 결국 그의 아들이 외계인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그는 전혀 기도할 줄도 모른다는 걸 재인식하게 됩니다.
그래도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만을 살려달라고 기도했고, 아들은 살았습니다. 아들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레이엄은 대답합니다.
“누군가 널 도와주셨어.”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사제였으니 나는 당연히 한때 신앙심이 있었다.”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기도를 완전히 포기한 채 살아온 사람이 위기 앞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결국 그레이엄은 아내의 죽음과 아들의 위기를 통해 비로소 다시 기도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믿음을 새롭게 작동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믿음 없음’이 아니라, ‘믿음이 이미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아이 아버지는 예수님께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계속 청합니다.
사실 이 고백 자체가 이미 믿음의 시작임을 보여 줍니다. 진정한 믿음이라면, 주님께 자기 부족함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기도로 다시 불붙은’ 사례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들 수 있습니다. 데레사는 젊은 시절 수도원에 들어간 뒤에도, 한동안은 기도에 전념하지 못하고 세속적 대화나 활동에 더 마음을 두었습니다.
스스로 “수도자이니 이미 충분히 경건하다.”라고 여기는 착각도 있었지요. 그러나 심한 병을 앓아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회복된 뒤, 자신이 “참으로 진지한 기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철저히 기도 생활을 쇄신합니다. 매일 묵상과 침묵 속에서 “주님, 저는 부족합니다. 저에게 힘을 주소서.”라고 청하며,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기도를 다시 회복해 갔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깊은 관상과 신비체험을 하게 되고,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는 등 교회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바로 그 과정이 영적으로 메말랐던 자신을 회개시킨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데레사는 여러 저술을 통해 기도의 중요성을 직접 역설하는데, 특히 《완덕의 길(The Way of Perfection)》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기도란 결코 다름 아닌, 친구 사이의 친밀한 대화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주님을 찾기 위해 날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심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성녀는 우리가 스스로 영적으로 뛰어나다고 착각하지 않고, 날마다 ‘내가 부족하다’라는 걸 인정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 비로소 하느님 은총이 크게 드러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이에 따라 “믿음이 없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라는 주제는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여기지 않고, “주님, 저는 부족합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순간, 비로소 믿음이 기도를 작동시키기 시작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가 그대로 받게 될 것이다.”(마르 11,24)라는 가르침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즉, 우리의 믿음이 움직일 때 기도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마귀가 노리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좌절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 충분하다고 착각’하여 기도를 소홀히 하도록 만드는 함정입니다. 마음 한구석의 불신, 혹은 잘못된 자기만족을 부추김으로써 영적 방심을 유도합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서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전하는 직접적인 충고를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원수(하느님)’ 그 자체께 시선을 두면 우리는 패배를 면치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을 하느님에게서 돌려 자기 자신만 바라보게 만들면, 쉽게 기도에서 멀어지도록 할 수 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신학교 다닐 때, 테니스를 치다가 허리를 삐끗했었습니다. 사실 많은 분이 테니스 치는 저를 향해 “자세를 똑바로 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탁구를 하다 보니 몸에 탁구 자세가 그대로 배어 있던 것입니다. 이 탁구 자세로 테니스를 치니 결국 허리에 큰 부담이 되었고 몇 차례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세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운동이 처음 배울 때 자세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자세를 갖추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자세가 잘못되었거나 그리고 이 잘못된 자세를 전혀 고치려 들지 않는다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자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발전 속도가 느린 것인데, 만약 상대방 때문에, 환경 때문에 등의 실패 원인을 말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세부터 고쳐!”
신앙인의 자세도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세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자기 자세가 잘못되었는데도 그 점을 고치려고 하지 않으면서 주님께만 문제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왜 불공평하냐고…
이 믿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단순히 ‘믿겠다’라고 말만 해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벙어리 영을 쫓아내 달라고 했지만,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시고,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의 바른 자세는 ‘믿음’이고, 이 믿음은 기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면서 다른 방법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의 바른 자세를 다시금 생각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명언
내면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삶의 외면도 바꿀 수 있다
- 윌리엄 제임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는 기도하는 부모가 되게 하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생활에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부모가 기도로 바뀌면 온 가족이 바뀝니다.
우리의 신앙도 성숙해지는 어른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어른스러움이란 조르고 부탁하는 것에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로 실천하고 이루어내는 겸손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법을 다시 배우고 깨닫는 믿음의 시간입니다. 하느님과 우리가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뿐입니다. 믿음은 기도로 드러납니다.
기도는 믿음의 실천이며 믿음의 생활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믿음을 딛고 일어서는 겸허한 삶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되는 것을 하느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에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하나하나 극복해 내며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정화로 저마다의 가정과 공동체가 새로워지길 바라는 간절한 믿음의 기도가 이 하루를 엽니다. 기도가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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