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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0월 18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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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0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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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8일 (화)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2티모 4장 10-17ㄴ절)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0장 1-9절)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0월 18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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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주 하느님, 복된 루카를 뽑으시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신비를 설교와 기록으로 세상에 알리게 하셨으니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부르는 저희가 언제나 한마음 한뜻이 되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

 

 

복음
루카 10장 1-9절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상엽 야고보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8일 (화)
김상엽 야고보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8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하신 말씀을 오늘 복음에서 듣습니다.

오늘 축일을 기리는 루카 복음사가는 특이하게도, 내용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개의 제자 파견 사화를 전합니다. 하나는 ‘열두 제자’의 파견과 관련이 있고(9,1-6 참조), 다른 하나는 오늘 복음에 해당하는 ‘일흔두 제자’의 파견 이야기입니다(10,1-12 참조).

후자는 루카 복음에만 나타나는데, 루카는 왜 열두 제자의 파견 외에 일흔두 제자의 파견을 또 이야기하였을까요? 

그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는 데에, 열두 명의 파견만으로는 그 수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더 많은 이의 파견으로 더욱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이미 믿음을 가지게 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 널리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복음 선포에 헌신할 일꾼들이 어느 시대든 늘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소자들이 크게 감소하는 위기에 맞닥뜨려 있습니다. 물론 학령 인구 자체가 줄어든 영향도 있겠지만,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는 해가 갈수록 큰 폭으로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이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련히 아시고 일꾼들을 부르시겠지.’ 하며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됩니다. 그 일꾼들을 주님께 청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할 이들을 지속적으로 키워 내는 일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성소자 육성을 소홀히 생각한다면, 이는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들을 많이 보내 주십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가 주님을 기록한다면

 

축일을 맞아 루카 복음사가의 삶을 묵상하다 보니 나라면 주님의 복음을 어떻게 쓸까 생각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마태오 사도처럼 복음을 쓰지는 않을 것이고, 루카 복음사가처럼 복음을 쓰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것은 죄인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신 주님을 다른 어떤 복음사가보다 따듯한 시선으로 전하기 때문이지요. 

한때 저는 곡을 썼고, 소설도 쓰려고 끄적거렸는데, 곡은 성가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고, 소설은 성서의 인물을 제 시각으로 그리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예를 들면,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나 키레네의 시몬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것인데, 당연히 주님과의 만남이랄까 인연을 중심으로 소설을 엮어나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서의 인물을 소설화하는 것은 생각해봤지만 주님의 생애를 루카 복음사가처럼 기록하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생애를 기록하고 전한다는 것은, 사실 예술적 호기심이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영적인 사랑에서 비롯되고, 영적인 사랑으로만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베드로 사도나 사도들이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쓸 수도 있었고, 그들이 쓰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들이 쓰지 않을 것을 보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이 각기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얘기했잖습니까?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아무튼, 루카 복음사가는 주님의 생애를 기록할 정도로 주님을 사랑했고, 그분의 추종자들인 사도들의 활약인 사도행전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제자들의 활약을 자기가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은 자기 안에서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이어지는 것이지만, 기록은 세상에 남기는 것이요, 자기 사후에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잊혀서도 안 되겠지만 사람들에게 잊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루카 복음사가가 복음을 기록한 것은 주님뿐 아니라 세상을 사랑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만 아니라 사람들도 자기가 알고 있는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직접 들은 사람들 뿐 아니라 먼 곳에서도 그리고 먼 훗날에도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려는 거였으니 그는 먼 곳에 있는 사람도 사랑한 것이고, 지금의 우리까지 사랑한 셈입니다. 

저도 같은 지향으로 복음 나눔이란 형식으로 많은 글을 쓰고 있고, 그래서 지구 저편에서도 제 글을 읽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책으로 내면 좋지 않겠냐는 말도 종종 듣는데 그때마다 저는 계면쩍은 일이라 그럴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길이 남을 만큼 훌륭한 기록과 글이라면 내가 남기지 않아도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지녀야 할 것은 루카 복음사가처럼 주님을 진정 사랑하여 주님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과,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여 행복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저는 의자가 아니니까요.

 

책을 읽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신부님께서 어느 자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자매님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이 자신에게 “넌 창녀야!”라고 했다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여쭈었습니다. 
 
“만약 남편이 당신에게 ‘넌 창녀야!’라는 말 대신 ‘넌 의자야!’라고 했다면 지금처럼 화가 나고 슬펐을까요?” 
 
“물론 아니죠.”라고 자매님께서 대답하자, “왜 화가 나거나 슬프지 않나요?”라고 다시 묻습니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저는 의자가 아니니까요.” 
 
그러자 신부님께서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창녀가 아닌데, 왜 남편 앞에서 힘들어하죠?” 
 
진실이 아닌 말에 흔들리고 있는 우리가 아닐까요? 나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하는 말은 거짓이 담긴 말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에 굳이 힘들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진실이 아닌 말과 행동에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진실과 늘 함께하는, 그래서 주님의 뜻에 충실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흔두 명의 제자를 둘씩 짝지어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풍족하게 해서 보내지 않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않게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힘든 곳에 보낸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서 보낼까요?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해서 보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한없이 부족하게 해서 보내십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크게 흔들릴 것 같습니다. 불평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주님 말씀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세상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불편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의 뜻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말과 행동에 계속해서 흔들렸던 것이 아닐까요? 그 흔들림 앞에서 주님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주님 뜻에 무조건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이지.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오늘의 단풍을 놓치지 마십시오. 짧기에 아름다운 가을의 고운 단풍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루카 복음으로 독특하게 그려낸 루카 복음사가의 축일입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려지지 않는 사랑의 복음입니다. 

루카 복음은 사랑으로 우리를 비추어주는 맑은 거울이 됩니다. 맑은 구원은 사랑과 용서임을 만나게 됩니다. 쓰러져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루카 복음만의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은 성 루카가 아름답게 체험한 하느님 사랑의 체험이었습니다. 

사랑의 체험은 여러 색깔의 물감이 되어 서로를 만납니다. 작은 아들과 큰 아들 마리아와 엘리사벳 착한 사마리아 사람과 강도를 만난 사람 마르타와 마리아 부자와 라자로 바리사이와 세리 예수님과 자캐오가 만납니다. 

루카 복음은 만남이며 체험입니다. 이 이야기들 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을 루카 복음사가의 삶입니다. 하느님께 사랑받지 못할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사랑은 반드시 하느님을 거쳐갑니다. 아주 친근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는 루카복음은 자연스레 우리 내면을 건드립니다. 문자(文字)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이 돌아갈 집을 아는 내면의 기쁜 여정이길 기도드립니다.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의 삶에서 참된 사랑 뜨거운 사랑 가슴 뛰는 삶을 만나는 루카 복음의 오늘입니다. 가장 중요한 오늘을 다시 일깨워주는 성 루카 복음사가의 오늘 축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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