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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1/24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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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내 양 떼를 찾아서, 그들을 먹일 목자를 세우리라. 나 주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하느님, 복된 프란치스코 주교가 목자의 사랑을 실천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를 본받아 형제들을 섬기며 언제나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2025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월 24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1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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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히브 8,6-13
오늘 제1독서

 

그리스도는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저 첫째 계약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결함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아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10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1 
그때에는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제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 
나는 그들의 불의를 너그럽게 보아주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마르 3,13-19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24일
권용훈 안토니오 신부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05

✚ 강론시작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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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12’는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의 숫자입니다. 완전과 충만을 뜻하는 숫자이지요. 

그러기에 구약 성경은 메시아의 할 일을 늘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 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로 묘사하였습니다. 따라서 열두 사도를 뽑는 일은 그러한 구원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사도’는 부름을 받아 파견된 존재, 사명이 위임된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신 것처럼, 제자들 또한 자신들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예수님의 삶은 바로 이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4-15). 

그런데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처방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2,5). 

그러기에 제자들은 파견되기에 앞서 예수님 곁에 머물며 그분을 맛 들여야 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있는 그대로 나를 원하시고 사랑하시는

“그때에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오늘 복음은 너무도 많이 들은 복음이지만 오늘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이라는 말씀이 특히 눈에 들어오면서 나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일까 하는 묵상을 저절로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시고 난 뒤에 원하시게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보시고 마음에 들어 원하시게 된 것이 아니라 보시기도 전에 원하셨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태어나기도 전에 손주를 원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떤 손주 이전에 손주를 원하듯 주님께서도 어떤 제자 이전에 사도를 원하셨고 그래서 누구든 사도로 뽑으셨을 것이고 그래서 ‘어떤’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나 중심이고 그래서 사랑이 부족할 때는 내 마음에 드는 어떤 사람이기를 원했고 그런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전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를 원하게 되었으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나이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러하니 주님께서는 얼마나 더 무조건 사랑하시고 원하셨을까요? 

사실 사도들의 면면을 보면 주님 교회의 열두 기둥이 되기에 부족한 분들이지요. 주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저를 있는 그대로 원하시고 사랑하실 겁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준마를 원하지 않으시고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는 어린 나귀를 원하셨듯이 저를 사랑하기를 원하셨고 제가 당신 사도 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 주시고 당신 사도로 뽑아주심에.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지금 나는 누구와 함께 지내고 있는가? 나 자신인가? 예수님인가?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마르 3,13)

이는 마치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나이 산으로 불러올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처럼, 그분께서는 먼저 부르시고, 제자들은 그분께 응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이토록, 당신께서는 우리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성소는 당신이 원하신 것이요, 당신이 주신 선물이요, 은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 나아온” 이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부른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응답한 이의 삶이 바꾸어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이는 대통령의 영광을 입은 것이고, 대통령이 부여한 일을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이는 하느님의 영광을 입은 것이고, 하느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복음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 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4-15)

이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열 두 부족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민족을 갱신하고, 신약의 새로운 백성을 선포하십니다. ‘세우다’란 말의 원어의 뜻은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새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만들어지고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둘을 “사도”라 부르십니다. 그러니 결국, 이 “열둘”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곧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제자’(μαθετεσ)라는 의미와 동시에,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나라를 선포하고 다니는 “사도”(αποστολοσ)라는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제자요 사도인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가? 그것은 우선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것’ 입니다. 그것은 마치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부모를 떠나 ‘부부가 함께 지내는 것’처럼 한 몸을 이루며,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 안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스승이 계시는 곳에 제자도 있어야 하고, 스승이 파견한 일을 사도가 하게 됩니다. 곧 제자와 사도의 신원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이’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함께 지내되, 누구와 함께 지내느냐?’ 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지낸다.’는 것은 ‘물들어 간다. 섞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곧 악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악에 물들고 선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선에 물들어가듯,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 하느님이 되어갑니다. 

곧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되어 간다는 것이요,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가 됩니다.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 나르는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가 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입니다.

“지금 나는 누구와 함께 지내고 있는가? 나 자신인가? 예수님인가?”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3,14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분명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고 
당신 뜻 안에 살게 하소서.

당신 뜻의 실천이 
제 양식이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고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신앙생활 오래 해도 주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

라이언 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목사로서 약 20년 동안 신앙과 사역에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2013년, 그는 “하느님 없이 보낸 1년”이라는 실험을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신앙에 대한 점진적인 의심과 불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벨은 자신의 갈등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제 신앙을 더 포용적이고 자비롭게 만들고자 했지만, 그럴수록 기독교가 감당할 수 있는 경계가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속한 교회가 동성애자나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과 타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실험에서 벨은 기도와 교회 출석을 포함한 모든 종교적 관행을 중단하고, 마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무신론의 세계로 들어가고 무신론자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1년간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하나님을 어떤 일의 근원이라든지 나 자신이나 어떤 이의 삶을 바꾸어줄 희망이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기대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을 때,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는 이 여정을 기록하며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었습니다. 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깊은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단순히 신념 체계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방식을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성, 연민, 정의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상했습니다. 

“제가 신앙 안에서 소중히 여겼던 많은 가치들 — 친절, 관대함, 평등에 대한 헌신 — 이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여전히 실천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1년이 끝난 후, 벨은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책도 읽고, 깊이 생각하고, 신앙과 무신앙 양쪽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제가 믿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라이언 벨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벨은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시간이 지나며 다시 거의 무신론자가 되는 수많은 냉담자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둘을 뽑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가 열둘을 임명하셨으니, 그들이 그분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낼 권한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뽑으시는 세 가지 이유는 a. 함께 있게 하시고 = 기도하게 하시고, b.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 선교 사명을 주시며, c.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성령의 선물을 주고자 하심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라이언 벨의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분명 뽑혔으니 주님과 함께 머물렀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 사명으로 ‘파견’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파견받으면 주님께서 성령의 힘을 주시는데 이를 통해 주님을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성 요한 보스코의 삶을 돌아봅시다. 그는 1815년 이탈리아 베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 그의 가족은 생계를 위해 애썼습니다.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그에게 강한 신앙심을 심어주며, 어려운 시기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밝고 쾌활한 성격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요한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능했지만, 그는 훗날 자신의 부르심 이전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참새 같았다. 내 마음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이 하느님의 목적에 따라 계획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아홉 살 때 꾸었던 생생한 꿈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싸우고 소리치며 욕설을 퍼붓는 소년들로 가득 찬 들판을 보았습니다. 그때 흰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친절과 사랑으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 

이 꿈은 그의 삶 내내 그를 떠나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인도하고 돌보겠다는 그의 사명을 형성했습니다. 그는 이 사명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것이라는 확신을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아이들을 내 손에 맡기셨다. 그분은 내가 이들을 인도하고 사랑하며, 그들을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가길 원하신다.” 

그의 이러한 목적의식은 그가 어려움을 견디고 자신의 사명을 지속하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힘을 깊이 믿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의 열쇠이며, 우리는 끊임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우리의 노력은 어둠 속의 화살과 같습니다.” 

그는 성체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사역을 위한 힘과 지침을 얻었습니다. 그는 소년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체와 마리아께 가까이 있으십시오. 그러면 여정에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성령의 은총은 보스코의 삶에서 놀라운 사건들과 열매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오라토리오가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보스코는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부유한 후원자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 필요한 금액을 기부했습니다. 또 다른 일화로, 보스코는 한 중병에 걸린 소년이 나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말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하느님의 손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소년은 회복되었고, 이는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돛을 채우는 바람과 같습니다. 그분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한 모든 것 안에서 성령의 힘을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파견받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성령으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면, 기도할 것이고, 기도한다면 그 부르심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사명을 찾으려 할 것이며, 사명에 순종하면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0,10-12)

주님께 파견받았다고 믿어야만 성령의 도우심이 주어집니다. 라이언 벨처럼 목사로 살아도 매일 기도로 파견받지 못하면 목사가 되어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매일 미사를 하거나 기도를 마칠 때,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나의 사명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묻고 결심하고 나가서는 실천해야 합니다. 기도에서 파견이 빠지면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누구든지 선택을 받아 제자가 될 수 있다

현재 인간은 생태계 피라미드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도, 강력한 발톱도, 뭐든 부술 수 있는 턱도 없는데 말입니다. 모든 동물 중에서 최정상에 군림할 수 있는 이유를 학자들은 ‘직립보행’ 때문이라고 합니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동물들이 직립보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직립보행을 할 때 발바닥에 가해지는 압력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몸의 무게를 두 발로만 버티기가 힘들어서 대부분 사족보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떻게 두 발로 몸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움푹 팬 발바닥 때문이었습니다.
 
건물 입구, 다리, 터널을 보면 곡선 형태의 구조인 아치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치 형태가 별도의 지지대가 없어도 엄청난 하중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치가 우리 발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평발이라서 군대에 가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서 있어야 하고, 행군도 해야 하는 군인에게 평발은 군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 쓰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았는데 너무나도 중요했던 부분이라는 사실, 하느님께서는 세세히 신경 쓰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판단만을 내세우고, 세상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지금이야 이 열두 사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지요.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나 사제 무리에 속한 사람들처럼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스승을 팔아넘기고, 수난과 죽음에 뿔뿔이 흩어지는 나약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실수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에 중요한 당신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당신의 선택을 받아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죄를 범하더라도, 나약함과 부족함이 넘쳐나더라도 상관없이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세세하게 신경 쓰시는 주님의 사랑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면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영원히 여기 머물 것처럼 일하고, 내일은 떠날 것처럼 준비하겠다

- 브뤼기에르 주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예수님의 사랑법은 당신과 함께 지내는 머무름의 사랑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지내길 바라십니다. 머무름의 빛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머무름이 노래가 되고 기도가 탄생이 됩니다. 다시 태어나는 제자들의 기쁨이 됩니다. 우리를 위해 함께 지내는 머무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생활을 배웁니다.

생활의 시선은 감사를 향합니다. 이렇듯 머무름이 펼쳐나가는 사랑의 새로운 길입니다. 오늘에서야 알게되는 사랑받는 기쁘고 뜨거운 귀한 만남입니다. 우리는 머무름을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머무름입니다. 오랫동안 머무름의 기쁨을 잊고 살았습니다. 머무름의 초대는 가장 좋은 사랑의 초대입니다. 가장 좋으신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가장 좋은 사랑의 복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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