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9월 18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9. 18.
반응형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9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25주일 -

 

 

2022년 9월 18일 연중 제25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가난한 이를 망하게 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의 모든 행동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을 맹세하셨다고 경고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집사의 비유를 드시며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9월 18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루카 16장 1-13절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백남일 요셉 신부 강론

 

 

2022년 9월 18일 (일)
백남일 요셉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이길재 베드로 신부 강론

 

 

2022년 9월 18일 (일)
이길재 베드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약은 집사의 비유

 

‘약은 집사의 비유’ 속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 무능한 종이고, 자신의 잘못이 발각되자 주인의 채무자들을 불러 빚을 탕감해 주며 제 살길을 찾은 ‘횡령범’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고 칭찬받을 만하다고 하시며 제자들의 본보기로 삼으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집사의 불의한 처신에 대한 윤리적 평가가 아니라,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재산을 사용하여 임박한 위기에 신속히 대처하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땅이 오직 하느님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땅에서 거둔 것들 모두 하느님께서 주셨다고 믿었기에, 재산의 일부를 하느님께 봉헌하거나(십일조) 곤경에 놓인 이웃을 구제하는 데 쓰는 일에(자선) 익숙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비유에서, 내 재화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나는 그분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입니다. 

내가 가진 재화는 모두 하느님의 것이고 그분께서 잠시 내게 맡겨 두신 것이니, 그것을 잘 활용하여 하느님 나라에 “영원한 거처”를 마련해야 합니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썩어 없어질 세상의 재물조차 올바로 쓸 줄 모르는 인색한 자는 구원의 몫을 바라지 못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보이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속여서 이득을 챙기는 자를 향한 아모스의 경고와, 하느님께서 이웃을 위한 기도와 전구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을 기억합시다. 또한 복음의 비유 속 집사의 예지와 기민함을 묵상하면서, 이웃을 배려하며 베푸는 자선과 기도로 하느님 나라에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는 나날을 이어 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물 한 잔도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믿음이 순교까지 이르게 한다.

 

개그맨 김준호 씨가 예전에 도박에 중독됐던 당시의 심정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김준호는 지난 도박과 관련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푹 빠져있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도박을 시작했을 땐 결혼한 상태였다. 당시 아내가 외국에 있어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며 도박에 빠져들었다”라며 “누구 하나 제어해줄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 중독이 많이 된 상태였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피눈물 흘리신 뒤로 두 번 다시 안 하게 됐다”라며 “연예인은 외로운 직업이다. 외로워도 그걸 풀 방법이 별로 없다. 그래서 술이나 도박, 마약, 프로포폴, 여자 등 여러 문제에 휩싸이게 되는 것 같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우리가 삶의 질을 이야기할 때 김준호 씨가 도박에 빠져있었을 때가 삶의 질이 좋았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삶의 질은 아무래도 목표를 향해 내어 디딜 때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고통을 잘 견뎌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인생은 고통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는 보상이 주어져야 합니다. 김준호 씨는 다른 것들로 자기가 치러야 하는 고통에 보상해 주었습니다. 이 보상 덕분으로 삶의 질이 추락했습니다. 

켈리 최 회장과 같은 사람은 나이 마흔이 되어 빚만 10억을 진 상태였고 죽고 싶었습니다.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때문에 죽지는 못하고 삶의 질을 변화시켜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자신이 받아야 하는 고통에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술을 끊고, 쓸데없는 모임을 끊고, 드라마와 게임을 끊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참아내야 했던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고 이것이 실제로는 그녀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10년 만에 연 매출 6,000억에 이르는 회사를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을 ‘만족 지연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 능력이 클수록 삶의 ‘마시멜로 실험’이란 1960년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진이 3~5세의 아이들, 653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던 것입니다. 아이들 앞에 마시멜로를 놓아두고 먹지 말라고 하면서 15분 정도 기다리면 하나 더 주겠다고 하고 아이들이 그것을 지킬 수 있는가 보는 실험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에 그 실험에서 15분 기다려서 먹은 아이들과 바로 집어먹은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추적해본 결과, 기다려서 하나 더 받았던 아이들이 사회적 지위가 더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추적 검사의 결과, 우리 삶에서 인내와 절제심이 있는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결론이 도출되어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2018년, 캘리포니아 대학과 뉴욕대 신경과학 연구진이 다시 아이들의 환경까지 조사해보니 15분 이상 기다린 아이들의 집안이 대개 중산층 이상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자주 먹었거나 먹고 싶다고 하면 어른이 얼마든지 사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라서 기다리고 인내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집어 먹었던 아이는 그냥 놔두었다간 다른 형제에게 뺏기거나 나중에 다시 먹을 기회가 없다는 경험치를 갖고 있었던 가난한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을 잘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은 그 고통에 대한 보상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에서 온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2012년 심리학 잡지 코그니션(Cognition)에 록펠러 대학의 키드(C. Kidd) 팀이 발표한 마시멜로 실험은 마시멜로를 눈앞에 두고 기다릴 수 있는 아이와 기다릴 수 없는 아이를 만드는 요인은 신뢰감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실험은 1차와 2차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아이들에게 1차에서 몇 분만 기다리면 컵을 예쁘게 꾸밀 수 있는 재료를 더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참여한 아이들의 반(14명)에는 실제로 기다리면 미술 재료를 주었고 반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재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존의 마시멜로 실험을 진행했을 때 신뢰 환경에 있었던 아이들은 평균 12분을 기다렸고 많은 아이가 기다리기로 했던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비신뢰 환경에 있던 아이들은 평균 3분을 기다렸고 15분까지 기다린 아이는 전제 14명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실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삶의 질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에 따르는 것은 맞지만 그 능력은 “보상에 대한 신뢰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이 신뢰 수준이 곧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보상 없이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순교성인과 복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고통을 즐겨 받았습니다. 사실 생로병사의 모든 고통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죽음이 모든 고통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인들은 이 죽음의 고통까지도 즐겨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음 뒤에 오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살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과는 다르게 진취적으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고 질 좋은 삶을 산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도 사실은 순교로 나아간 사람입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기는 하지만 실제로 보상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랑으로는 그런 경지까지 오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14)

사람들은 뭐 그런 것을 바라고 고통을 감내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도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으셨다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서까지도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어리석음입니다. 모든 고통에는 보상이 따르고 우리는 그 보상 때문에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보상에 대한 확신이 우리를 순교의 사랑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질 좋은 삶을 살도록 고통을 이겨낼 힘을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은 아픈 자녀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안 죽어!”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어떠한 보상도 약속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로는 죽음의 고통을 감내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보상을 바라는 것이지 거짓말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이성적인 접근입니다. 살아있으면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으면 알 수 없으니 굳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죽음 뒤에는 고통이 없이 인간이 사라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진화론적인 사고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면 얻을 수 있는 어떤 보상도 약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세상은 즐기는 것으로 전락합니다.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이제 종교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가 주는 믿음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먼저 불교를 들 수 있습니다. 불교는 원래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애초에 부처님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얼음을 주고 놀라고 했는데 얼음이 녹아버렸습니다. 아이는 얼음이 소멸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어른은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물이 다시 얼음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얼음이 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죽음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때 얼음을 물로 만드는 에너지, 물을 다시 얼음으로 만드는 에너지를 주는 절대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을 리 없습니다. 신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죽음은 소멸과 생성의 순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만 줄 뿐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두려워하고 산 삶이나 그렇지 않은 삶이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인격적 신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 있다고 믿는 종교는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천국과 지옥이 존재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 만든 의도가 있을 것이고 그 의도대로 쓰이지 않으면 영원한 소멸로 가는 것이고 그 의도대로 쓰이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기에 창조자가 원하는 대로 쓰이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창조자의 의도대로 산다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괜찮아, 괜찮아. 죽어도 돼, 죽어도 돼! 아니, 죽어야 살 수 있어!”

죽어야 살 수 있음을 보여주신 분들이 순교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상을 얻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이 순교입니다. 

순교자가 무슨 삶의 질이 좋았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많은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삶의 질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많으면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인생을 항해하는 것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에 떠 있으면 노를 저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이 항해를 통해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지에 대한 명확한 신뢰가 없다면 물에 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우리는 파견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삶에 의미를 갖고 그래야 보상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보상에 대한 믿음은 선택입니다. 이 선택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6월에 코를 수술받았습니다. 코안에 물혹이 생기면서 냄새를 맡지 못한지가 자그마치 6년이나 되었었지요. 그러다가 코를 수술하고서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제 방에서 그렇게 좋지 않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지요. 그래서 얼른 향초를 계속 켜 놓고, 매일 아침 방 청소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좋지 않은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며칠 뒤에 아는 지인들이 사제관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곰팡내가 나요.” 
 
사제관 건물에 이상이 생겨서 비가 내리면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졌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빗물이 제대로 마르지 않아서 곰팡이가 피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냄새를 맡지 못했기에 곰팡내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원인을 알게 되니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비가 새지 않도록 지붕에 비밀을 덮었고, 제습기를 계속 틀어서 습기를 제거했습니다. 얼마 뒤에 이상한 냄새는 사라졌습니다. 
 
방법은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모르면 방법은 찾을 수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상황의 극복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은 집사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의 집사가 의무를 게을리하고 부정한 일 처리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인은 해고를 통보하지요. 그러자 관리인은 빚진 사람의 빚을 줄여주는 간교하고 부정한 일을 저지릅니다. 이상한 것은 이 사실을 알고도 책망은커녕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약삭빠르게 일 처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비유의 집사는 앞날의 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당한 수단까지 동원하는 약삭빠른 꾀를 썼습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돈을 다루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능수능란합니다. 그 수법과 재주를 천상 보화를 얻는 데 쓴다면 얼마나 거룩한 일이겠습니까? 그 재주를 발휘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남을 돕는 일입니다. 
 
세상의 좋은 것을 다 동원해서 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얻어내야 할 목표라는 것이 예수님 가르침의 요점입니다. 방법이 없다면서 주님의 일 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이란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사랑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우리의 믿음이다.

- 케이트 도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카 9, 24)

 

오곡백과 영그는 이 계절에 순교자들 대축일을 감사로이 맞이한다.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이 땅을 물들인다. 간절한 신앙이 무엇인지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순교는 자기혁명이다. 자아 중심에서 벗어나는 가장 뜨거운 혁명이다. 이기적인 욕망을 하느님 중심으로 바꾸어 놓는 가장 위대한 순교이다. 실천성과 만남은 이렇듯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 신앙이 응집되고 결집된 결정체가 바로 이 땅의 순교자들이 보여주셨던 신앙의 삶이었다. 

이렇듯 신앙의 힘은 위대하다. 궁극의 가르침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주는 십자가를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순교자들의 삶을 통해 배우게 된다. 왜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배우게 된다. 

참된 진리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이 땅에 거룩한 사랑이 우리 선조들을 통해 실현되었다. 이 땅의 소중하신 순교자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선물은 올바른 실천이다. 참된 양심의 실천이다. 

믿는 우리들의 삶으로 드러내야 할 사랑의 실천이다. 정신적 자유를 향한 신앙의 여정은 소요돌이 치는 그 한가운데를 아프게 지나왔다. 이 땅의 순교는 닫힌 믿음이 아닌 하느님과 사람에게 활짝 열려있는 실천의 횃불이 되셨다. 

오늘을 사는 가톨릭 신앙인들은 어떠한 복음의 실천을 후손들에게 남겨줄 것인가를 묻게된다. 삶의 변화 존재의 변혁이 필요한 시대이다. 기도와 실천으로 탄생되는 일상의 순교이다. 

하느님을 위하는 것이 결국 우리모두를 위한 실천이 되었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완성되는 참된 사랑 뜨거운 순교이다. 이 땅의 순교자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자신부터 새로워지기를 다짐하며 기도드린다.

 

 

반응형

댓글